사천왕상은 흙으로 만들었다
정종의 태실은 대웅전 뒤편 북봉에 있었다,
"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백수 정완영의 '직지사운'을 읆조리면서 직지사를 찾았다.
생활속에 깃들어 있는 사연들은 사람과 사물의 거리감을 좁혀준다. 김천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녀온 직지사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먼저 김삿갓과 직지사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면, 김삿갓이 직지사를 찾아와서 스님과 글짓기 내기를 했다.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치아을 뽑는 특이한 시합이었다. "(중략) 추풍이라 했는 데 봄꽃이 피어 괴이 하구나/ 직지라 했는 데 꼬부랑 길이 웬 말이냐" 김삿갓의 직지발치승(直指拔齒僧)의 일부이다. 스님은 크게 한 번 웃고는 순순히 치아를 뽑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길은 일직선이 아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이 비스듬히 껶여 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직지사에는 임진왜란의 병화로 40개의 전각이 소실되고 천왕문, 일주문, 천불전 등 3개의 전각은 피해를 면하였다. 사천왕상은 조선 현종 6년 1665년에 완주 송광사에 거주하는 승려화가들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직지사 사천왕상은 흙으로 만들어서 옮겼을 때에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기가 어렵다. 최근까지 천왕문과 사천왕상을 몇 차례 보수한 기록은 있지만 이동이 곤란하여 건립당시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천왕상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다르다. 오방색으로 동서남북의 방위를 표시하고 있으며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이런 연유로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길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직지사는 임진왜란 때 방화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일주문도 그 와중에 불에 끄을렸으나 소실은 면하였다. 현판의 글씨는 조선 후기 명필이며 공조참판을 역임한 송하 조윤형(曺允亨)이 조선 영조 46년, 경인년(庚寅年), 1770년에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글씨는 여유롭고 부드러운 해서체이다. 일주문 내부에는 자하문(紫霞門)이라는 현판이 또 하나 있다. '자하' 한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자줏빛 금색 안개를 뜻하며, 자하문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한다. 구전에 의하면 일주문의 왼쪽 기둥은 싸리나무, 오른 쪽은 칡줄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2007년에 국립산림과학원의 재질연구실장 정성호씨는 '싸리나무기둥의 비밀'에서 싸리나무는 1~3미터 정도 밖에 자라지 않는 키 작은 활엽수이므로 직지사의 일주문의 재질은 '전나무'라고 적고 있다.
조선 제2대 정종 임금의 태를 보관했던 석조물의 일부분인 중동석이 북봉에서 이전되어 극락전 잔디밭에 놓여 있다. 직지사는 예로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왔으며 정종이 즉위한 1399년에 대웅전 뒤쪽 북봉에 정종 태실이 이전되어 설치되었다. 지금도 북봉의 정상부에는 태실의 흔적과 함께 아름드리 소나무가 주변에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 중추원사 조진을 보내 김산현에 태를 안치하게 하고, 김산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는 기록이 있다. 태실은 총독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1928년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전하였다. 직지사는 정종의 태를 수호하는 수직사찰(守職寺刹)로 지정되었다. 이런 연유로 직지사는 불교탄압을 한발 비켜설 수 있었으며 직지사 관할구역인 김산현은 어모현을 통합하여 김산군으로 승격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주문으로 올라가는 초입에는 포월당 봉률스님의 추모비가 있다. 직지사 주지를 역임했던 포월당은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기미년 3.1운동 당시에 독립선언서 1만여장을 인쇄하여 경상도 전 지역에 배포하였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김룡사 등지에서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였다. 일경에 잡혀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이다. 직지사 경내에는 사명당의 전각이 있다.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사명당스님은 16세에 직지사로 출가하여 30세에 주지를 역임한 호국선사이다.직지사에는 호국제민(護國濟民)의 정신이 이어오고 포월당스님의 추모다례제를 해마다 지내고 있다. 직지사가 지닌 또 다른 모습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