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화마가 휩쓴 산야에도 생명이 깃들 듯 남녘으로부터 매화향이 진하게 풍겨오고 산수유는 밤낮없이 노란 꽃망울을 톡톡 터트린다. 이에 뒤질세라 경칩을 갓 넘긴 산과 들녘으론 새싹들이 우후죽순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 기운이 얼마나 옹골찬 지 산이 흔들거리고 얼음이 풀린 들녘마다 똬리를 튼 생명들이 용트림이다.
유년시절 이맘때면 누님 두 분은 시커멓게 손때가 올라 반질거리는 싸리나무광주리에 정지(부엌)칼 또는 짝지(잭나이프’의 방언)칼을 담아 옆구리에 끼고선 인근 텃밭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볼라치면 연분홍색 봄 단장이 화사하고 고샅을 돌아나는 모습이 물 찬 제비처럼 가볍다. 바람같이 도착한 따비밭으론 팽팽한 봄볕을 뚫고 아지랑이가 아롱다롱한 가운데 쑥과 냉이가 일찌감치 고개를 내밀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미리 도착해서 봄나물을 뜯던 또래 처녀들이 건네는 봄 인사는 한결같아 “참꽃이 따로 없네!”놀리듯 하고 “애는 너도 마찬가지다 뭐!”하며 자리를 하는데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이 술에 취한 듯 불콰하지만 입 꼬리는 귀에 걸려 다물어 질 줄 모른다.
“어디 얼마나 캤어! 일찍도 왔네!”하며 광주리 검사를 하는데 밑바닥에 드문드문하다. “응~ 그게 오기는 일찍 왔는데 쑥도 냉이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하늘에 뜬 흰 구름 같다. “그저 노는 듯하자!”는 마음은 이미 봄바람에 녹아든 듯싶고 자리를 하는 모양새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커다랗게 원을 그리듯 오순도순 모여 앉는다. 마음만 바빠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놀림에 비해 소출은 별로 노고지리(종달새)의 지저귐처럼 도란도란한 이야기꽃으로 옅은 봄날이 농익는다.
숫총각들이라고 다를 바 없어 나뭇짐을 움푹 패도록 질근 동여맨 동바엔 어김없이 진달래꽃이 한 아름 꽂혀 있다. 숙맥인 듯 누구를 줄 건가 물어도 뒤통수만 긁적이며 바보처럼 헤죽헤죽 웃기만 한다. 아마 봄바람이 스친 가슴속에는 건넛마을 처녀가 다소곳이 들어앉은 모양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뭇짐이 앞마당으로 철퍼덕 부려지면 제일먼저 달려드는 것은 발길질에 차일 똥개도 아니고 미운털이 눈에 송송한 막내 동생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인가 여겨질 때 토끼를 눈앞에 둔 여우같이 달려들고 “어~ 어!”입에서 헛바람만 일 때 “야~ 참꽃이다”한 움큼 훑어서는 희죽거리다 입에 털어 넣고는 또 희멀겋게 웃는다.
연분홍으로 풍성한 꽃다발이 창졸간 혓바닥 긴 소가 후르르 훑어버린 듯 엉성하고 그 꽃대를 보는 눈은 가시에 찔린 듯 아프다. 무심한 청춘, 태연자약하니 한 잎 또 한 잎 알뜰하게 꽃잎을 따는 동생이 원수같이 여겨질 때 가슴으로 바람구멍이 생겨나 북풍한설이 일고 눈앞에서 경자가 사라지고 순이가 지워진다. 눈물이 핑 돌아 어디에다 눈길을 줄까싶어 마음만 심란하여 아궁이 앞에 앉아 장작 두어 개를 더 지피자 눈썹을 태울 기세로 거세다.
저 불길이 내 가슴 같았으면...!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는 아궁이가 미어터지도록 불길이 일어 활활 타오르건만 물벼락을 맞은 듯 폭삭 꺼져버린 이내 가슴속은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 같다. ‘뿌~우!’김이 오르는 소죽솥을 휘감아 흐르는 물이 눈물인 듯 보이고 모이를 찾아 주위를 알짱거리는 암탉들이 괜히 미워서 내지르는 발길질이 허공을 가르자 밑창 뚫어진 검정고무신짝만 주인님께 버림을 받아 거름더미 위에서 나동그라진다. 저놈의 고무신짝이 지금의 내 신세이리라!
대문간에 기대선 어머니조차 안타까운지 “에고 칠칠치 못해 미련 곰탱이 같은 놈!”입을 삐죽거리며 돌아서는 봄이다.
저녁상에 쑥국이 올라왔다. 쑥이 내뿜는 특유의 향이 방 안 가득이다. 악착같고 끈질긴 겨울이 순식간에 녹아드는 기분이다. 국물부터 한 숟갈 떠서 ‘후~후!’분 뒤 입으로 가져갈 때 짙은 쑥 향에 콧구멍이 뻥 뚫린 듯 생기가 돌고 밥상 위에 정갈하게 들어앉은 자태에 군침이 돌아 한입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봄을 품은 기분에 마음은 날아갈 듯하다. 생각 같아서는 몇 그릇의 밥이라도 거뜬할 것 같다. 쑥 잎을 뽀얗게 달라붙은 밀가루, 콩가루(?)가 데커레이션 같아 더 구미가 당긴다. 자반고등어도 돼지고기볶음도 부럽지가 않은 밥상이다. 칼날에 죽고 소금에 절어 죽은 뒤 여러 번 죽은 짠지(김장김치)가 군내를 풍기는 시기지만 반찬다운 반찬으로 거듭나는 때이기도 하다. 수수한 밥상이지만 일류요리사의 스테이크나 푸아그라 송로버섯이 부럽지 않다.
진정한 요리사의 요리란 최소한의 양념으로 식자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과 맛을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날의 요리를 평가할 때 어머니는 진정한 요리사였다. 쑥이 가진 특유의 향과 맛을 살리고 봄맛을 제대로 살렸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흔한 쑥조차 함부로 채취할 수가 없다. 공해로 인해 도시 주변의 쑥이나 냉이를 비롯한 봄나물들이 죄다 중금속에 오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물 캐는 봄 처녀는 더욱 보기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19’의 등쌀에 재래시장도 태반이 문을 닫았다. 따라서 할머니들이 좌판을 벌려 한 움큼에 몇 천원에 팔던 봄나물이 한순간 귀한 몸이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거짓말처럼 질병이 물러가고 마스크를 훌훌 벗어 던져 마음껏 활보하고 싶다. 나아가 모든 상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미구에 맞이할 그날에는 어머니의 손맛을 빌은 봄나물로만 그득하게 한상 차려 이 봄을 예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