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로 떠나기 며칠 전 스리랑카 항공사(Sri Lankan Airlines)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Schedule Change Notice!’ ‘뭐야, 이거’ 눈을 부릅뜨고 메일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오전 9시 10분에서 오후 1시 55분으로 변경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출발 날짜가 변경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행 중 항공사에서 메시지를 받으면 불안하기 그지없다.
몇 년 전 베트남 여행 때이다. 하루 전날 항공사로부터 비행기 출발이 다음 날로 변경되었다는 메시지가 왔었다. 이유야 어떠하든 간에 부랴부랴 숙소를 다시 찾고 예약된 숙소는 연기하고 뒤처리하느라 꽤나 고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스리랑카로 가는 날이다. 방콕에 있는 동안 왓포(Watpo) 사원 안에 있는 마사지 학교에서 마사지만 받았으니 새로운 문화를 만나러 가는 날이 얼마나 즐겁지 않겠는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숙소를 나선다. 지옥 같은 교통 체증을 피해 공항철도를 타고 도착한 수완나품(Bangkok Suvarnabhumi) 공항은 관광 도시의 대표 공항답게 웅장하고 화려하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찾은 안내 모니터에서 어찌 되었는지 스리랑카 에어라인(Sri Lankan Airline)을 화면에서 찾을 수가 없다. 혹시 출발 공항이 ‘돈므앙(Don Mueang) 공항’이 아닌가 싶어 예약 메일을 다시 뒤적이지만 여기가 맞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도 잘 모른다는 답변뿐이다. 스리랑카 항공사 보다 출발 시간이 늦은 다른 항공사도 모니터에 나와 있는데 우리의 항공사는 보이질 않는다. 공항 구석구석을 뒤지며 카운터를 찾아 헤매다 막 교체하고 있는 스리랑카 항공사를 발견하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국적기인데도 불구하고 국력 때문인지 아니면 게으른 직원 탓인지 모르지만 늦은 교대시간과 함께 공항 끄트머리에 자리한 항공사 카운터를 보면서 선입감 때문인지 몰라도 이 나라는 처음부터 왜 이렇게 서글프고 슬픈지 애처로움 마저 든다.
카운터 앞에는 한꺼번에 몰린 승객들로 인해 금세 혼잡해지지만 우리는 히잡(Hijab)을 두른 슬픈 눈을 가진 여직원에게서 눈을 떼질 못한다. 순수함이 그냥 뚝뚝 떨어지는 여직원이 생긋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수하물이 있는지를 물어온다.
'이보시오, 낭자! 배낭 하나만 가지고 다니는 놈들인데 뭔 짐이 있겠소만 낭자를 배낭에 넣어 가고 싶소. 신이시여! 여행하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이 낭자와 같은 순수한 여인네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AMEN!'
티켓을 받아 든 우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거금을 들여 예약한 스리랑카행 비행기에 오른다. 부처님 이빨을 보러 간다는 부푼 꿈을 안고 좌석에 앉는 순간 우리는 놀라고 만다.
저가항공에 찌든 우리가 수년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항공 서비스를 본 것이다. '아니 이게 뭐냐? TV도 있다. 이어폰도 있고 베개도 있다. 기내식도 준단다. 그것도 모두 무료다. 이게 몇 년 만에 받아보는 호사인가?' 비행기를 처음 타는 사람처럼 괜히 TV를 켰다가 꺼보기도 하고 담요도 덮어도 본다. 생각도 못한 서비스에 신기해하며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콕에서 3시간 반을 날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Colombo)에 도착하여 유럽풍의 건물과 또 다른 풍경에 취하며 만찬을 즐기다 보니 밤늦게야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하얀 창문을 넘어 침대로 기어들어 온 아침햇살의 앙탈에 큰 기지개를 켜며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는다. 인도양의 파도 소리만 들렸던 어젯밤과는 달리 하얀 이를 들어낸 인도양의 웅장함과 야자수로 입을 가린 푸르디푸른 하늘이 창문에 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풍경화 속에 파묻혀 멋진 아침을 마치고선 무엇에 그렇게 쫓기는지 배낭을 챙겨 문화유산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는 보물섬 담불라(Dambulla)로 향한다.
「가즈아, 보물섬으로! 기다려라, 고타마 싯다르타여(Gotama Siddhartha)!」
담불라는 스리랑카 여행의 백미이며 문화 삼각지 여행의 출발점이기도 한 곳이다. 스리랑카 여행객 대부분이 고생을 마다하고 반드시 찾는다는 시기리야(Sigiriya), 폴로나루와(Polonnaruwa) 그리고 미네리야(Minneriya) 국립공원으로 가는 베이스캠프이다. 어떤 이는 담불라에 있는 슬픈 전설의 시기리야만을 보기 위해 스리랑카를 찾는다고 하니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있는 도시가 아닌가 한다.
담불라 여행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이동 수단이다. 콜롬보에서 담불라까지 우리나라 같으면 1시간이면 족한 거리이지만 4시간여의 수고를 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택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기차와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버스는 1인당 500루피(한화 4천 원 정도)밖에 안되는 저렴한 요금과 다양한 거리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지만, 에어컨 버스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보니 버스 정류소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묻고 다니는 우리가 가엾었는지 담불라에 산다는 중년의 남자가 친절하게 에어컨 버스를 타는 곳과 시간을 알려주고서야 버스에 오를 수가 있었다.
에어컨 버스는 주변의 일반 버스와는 다르게 고급스럽다. 무심히 올라탄 버스 안은 ‘묻지마’ 관광버스도 아니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듣도 보도 못한 인도풍 노래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가는 내내 노래를 듣는 것도 힘겨운데 기사 녀석은 무슨 클랙슨을 그렇게 눌러대는지 돌아버릴 지경이다. 누군가는 클랙슨은 위협이 아니라 조심하라는 알림이라고 하지만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은 우리를 돌아버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 가지 않아 차 밖은 방콕에서부터 따라온 스콜(Squall) 녀석이 요란을 떨며 슬픈 눈을 가진 거리의 사람들을 어느 가게의 처마 밑으로 밀어 넣고 있다.
잠시나마 경적소리를 잊기 위해 노트북을 끄집어내어 오늘 묵을 숙소를 찾아 예약할 즘 버스 안 노랫소리가 차츰 익숙해지면서 우리들의 눈꺼풀은 스르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한참을 갔을까 버스는 담불라에 도착을 한다. 블로거에서만 보던 담불라 시내는 우리네 시골 읍과 비슷한 고만고만한 식당과 편의점 그리고 생활용품점이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리조트나 호텔 등은 외곽에 있어 관광객들이 숙소로 가려면 또 다른 교통수단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현지 식당에 들어서자 식당 주인과 종업원은 한국인을 처음 보는지 의아해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종업원에게 숙소 위치를 물으며 슬며시 말을 건네 본다. 종업원 녀석은 엄청나게 부끄러워하며 한국을 잘 알고 있으며 동네 사람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많이 갔다고 한다. 자기도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녀석은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하며 우리에게 친분을 보이지만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익히 듣는 이야기들이라 한쪽 귀로 흘려보낸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오늘 밤 도착 파티(?)를 즐기기 위하여 필요한 먹을거리와 파티에서 없어선 안 되는 술을 사러 건너편 편의점에 들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디에도 술이 보이지 않는다. ‘편의점에 술이 없다고?’ 여직원에게 술에 대해서 물어보지만, 여직원은 미친놈 쳐다보듯 하며 술을 파는 곳은 따로 있다며 옆 건물 2층으로 가 보란다. 왜 옆 건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갸우뚱하며 발길을 옮긴다. ‘엥! 이게 무슨 일이지?’ 1층부터 사람들이 계단을 따라 길게 줄지어 있다. 이런 광경이 익숙한 듯한 큰 키의 서양 녀석은 우리가 들어서자 싱긋 웃고는 벽에 기대어 스마트폰만 뒤적인다. 2층 가게 입구로 들어서자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한 사람씩 철창으로 된 창구를 통해 술을 구입하고 있다. 우리 순서가 되어 코코넛으로 만든 스리랑카 전통술과 맥주 몇 병을 산 후 2층에 꼭꼭 숨어서 술을 팔고 있는 낯설고 신기한 광경을 보느라 그 자리에 한참을 있었다. 어제 숙소의 ‘Bar’에선 맥주를 마셨는데...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친구 녀석은 ‘스리랑카는 폭동이 많아서 술 판매를 제한한 것이거나 아니면 권력과 돈 많은 놈들이 독점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리소설을 써댄다. 그럴듯한 해석이다. 여행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하고 잘못된 생각들을 바꾸게 하며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양손에 먹을거리를 잔뜩 들고 숙소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담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과 함께 지배인 아셀라(Asela)의 가족까지 나와서 우리를 반겨준다. 시내에서 가깝고 가족 같은 분위기의 멋진 리조트인데도 불구하고 숙박하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하다. 3인 1실의 하루 숙박비가 5만 원밖에 안 되는데 5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은 넓은 룸(Room)과 멋진 강을 배경으로 야자수 나무숲에 덮인 테라스(Terrace)는 우리의 감탄을 끄집어내기 충분하였다. 리조트의 풍경에 한참을 넋을 잃고 있을 때 지배인 아셀라가 오늘 별다른 계획이 없으면 인근에 있는 석굴 구경 가자고 한다. ‘요 녀석 봐라! 귀여운 짓은 골라 가면서 하네!’ 우리는 곧장 인근에 있는 담불라 황금 사원으로 향한다.
석굴 앞에 차를 세우고 입장권을 사기 위해 매표소로 다가서자 매표소 직원과 서양 처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처자의 목소리가 커진다. 처자는 배낭을 메고 입장하겠다고 하고 매표소 직원은 배낭은 맡겨야만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싸우더니 서양 처자가 이겼는지 그냥 배낭을 메고 석굴로 올라간다. ‘여기도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구나!’ 석굴 사원 앞 짐 보관소에 신발과 모자를 맡기고 맨발로 석굴 안으로 들어선다. 석굴을 보는 순간 부처와 동기동창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감탄사를 내뱉는다.
담불라 황금 사원(Golden Temple of Dambulla)은 2,200년간 내려온 스리랑카 석굴 사원 가운데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유적지이다. 기원전 2세기경 타밀(Tamil)족의 침략으로 수도를 빼앗긴 신할라(Sinhala)족 ‘바라감바후(Valagamba of Anuradhapura)’ 국왕은 이 석굴에 몸을 숨기고 14년간의 전쟁을 치르며 기원전 89년 수도를 탈환하게 된다. 그 이후 국왕은 석굴 사원을 대대적으로 중창하게 되고 성지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석굴사원은 5개의 석굴로 되어 있다. 1번 석굴은‘신성한 왕의 동굴’이라 불리는 자연 석굴로써 국왕이 피신했던 곳이다. 14m 불상이 장관을 이룬다. 2번 석굴은 국왕이 조성한 석굴로써 가장 크고 화려하다. 폭이 52m, 깊이 23m, 높이가 7m에 달한다.
이 석굴 안에는 16개의 입불상과 40개의 좌불상이 있으며 석굴 내부의 벽화는 불상과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해 준다. 석굴 안 한가운데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 돌 항아리가 놓여있으며 떨어지는 물은 어디서 흘러들어오는 지도 모르며 한시도 마른 적이 없었다고 하니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12세기경 스리랑카 국왕은 석굴 전체를 금으로 칠했다고 하지만 약탈 등으로 인해 지금은 금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석굴 사원은 종교의 예술성과 보존성 측면에서 매우 독특하여 1991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석굴 안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았다는 친구 녀석은 마치 부처를 알현한 듯 기뻐 날뛴다. 신기하기도 한 것이 같이 있었던 우리에게는 그런 행운(?)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물이 떨어지는 곳으로 접근도 할 수 없는데 그 녀석이 물을 맞았으니 어찌 신기하지 않은가? 어찌 되었든 친구 녀석은 그 이후로 많은 행운이 따랐다고 한다. 석굴 밖에는 마치 석가모니가 앉아 있을 법한 보리수가 석굴을 감싸고 있다. 앉기만 하면 공중부양을 하는 친구 녀석과 만물박사 녀석이 보리수 아래 가부좌를 틀고 눈을 내리깐다. 그 모습이 여느 대선사 못지않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웅장한 석굴사원과 부처님 눈물을 맞은 이야기로 시끌벅적하게 떠든다. 그날 밤 벌어진 천상에서의 보물 찾기 전야제는 아름다운 리조트의 밤 풍경에 취하고 지배인까지 합세한 술판에 취해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