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의좋은 형제'라는 형제간의 우애를 다룬 민담이 있었다.
한 마을에 따로 농사를 지으며 사는 형제가 가을이 되어 추수하고 각자 논에 볏가리를 쌓아 놓았다.
형이 생각하기를, 동생은 결혼해서 새로 살림을 났기에 쌀이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밤중에 몰래 논으로 가서 볏가리를 덜어 동생 볏가리에 쌓아 놓았다.
반면 동생이 생각하기에는 형은 식솔도 많으니 쌀이 더 필요할 거라고 여겨 밤중에 나가 자기 볏가리를 덜어 형의 볏가리에 쌓아 놓았다.
이튿날 논에 나가본 형제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지난밤에 볏가리를 옮겨 놓았는데 전혀 볏가리가 줄어 들지 않았다. 이튿날 밤에도 형제는 같은 행동을 했고, 셋째 날에 드디어 형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서로 밤중에 볏가리를 옮겼던 것이다.(내용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퍼옴)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골에 가면 봉암 누리길에도 이와 비슷한 스토리가 있는 형제 우애가 남달랐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오부자 형제 산소터가 있다.
1900년대 초반 경산 장림에는 오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제들은 그 우애와 협동심이 남달리 두터웠다. 형제들은 농사를 지을 때도 협동작업을 했는데, 서로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상대의 논으로 먼저 가서 벼를 거두어들이기를 권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바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말이 탄생했다고 한다.
오 형제는 생활방식도 검소하고 성실했으며 이웃에게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상부상조의 정실을 실천해 뒷날 성공한 부자가 되었다. 이곳 오부자 형제 산소 터는 넓고 숲이 울창해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의 행사장소나 인근 학교의 소풍 장소로 이용되었다. (봉암누리길 오부자묘 안내판에서 인용)
부모ㆍ형제 자매지간에도 재산 다툼으로 살인까지 벌어지는 살벌한 세상에 다시 생각해 볼 귀감이 되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대구광역시 수성구로 되어있지만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경산시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