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분 지도 한참이나 지났다. 울긋불긋 봄단장을 마친 나무 밑에서 듣는 새들의 하모니는 언제 들어도 상큼하여 머리가 맑다. 붉은색이 감도는 깃털을 앞가슴에 모은 곤줄박이가 꽃봉오리들 속에 숨고, 직박구리는 억센 목소리로 짝을 찾는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 한껏 몸을 늘이다 내려다보며 파릇파릇 쑥이 자라는 사이사이로 민들레가 보인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노란민들레 사이를 휘둘러 흰색민들레를 찾은 귓가로 마구간을 나서는 소가 “엄~메” 운다.
매년 이맘때면 선친께서는 쟁기질에 나선다. 마구간과 양지바른 두엄더미 옆을 지키던 소나 소일거리로 나뭇짐을 졌던 선친이나 쟁기질의 첫날이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손끝과 팔에 힘이 들고 쟁기를 당기는 어깨에 굳은살이 붙자면 며칠은 지나야 할 것이다. 이른 조반이 끝나자 선친께서는 이런저런 농기구를 손보시느라 분주한 끝에 새참에 맞추어 소를 몰아낸다. 미적거리는 소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마는 봄이면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야 하기에 재촉이다. “이랴! 워워! 데~데데” 작년의 기억을 되살려 용케도 알아들은 소가 보조를 맞추기 시작한다. 이런 날이면 쉬 지친 소를 위해서 일찍 일을 마치는 것이 상례이며 어머니의 배려로 여물에는 전에 없이 콩 한 됫박이 들어간다.
연두색 여린 풀들이 농익어 녹색을 띄기 시작하면 소에게 풀을 먹이는 계절이다. 방천을 운동삼아 뛰다가 누우면 천지가 내 세상이다. 푸른 하늘도, 흰 구름도, 코끝에서 녹아지는 바람도 다 내 것이다. 팔베개로 머리를 받치고 사지를 뻗자 덩치 커다란 소가 그늘을 만들어 한갓진 시간이다.
돌멩이를 모아 담을 만들고 사금파리를 모아선 건너 마을 동영이랑 밥상을 차린다. 엄마아빠놀이다. 오늘따라 나근나근하다. “여보 진지 드세요” 진흙이 변해 이밥이 되고 봇도랑물이 고깃국이다. 반찬도 많아 미나리는 꽁치로, 풀잎은 부침개, 죽은 풍뎅이는 통닭으로 변해 박을 켠 흥부네 집의 12첩 밥상이 부럽지 않다. 숟가락을 들어 한 숟갈을 푸려는데 왼쪽 볼이 시원하다. 깜짝 놀라 번쩍 떠진 눈앞에 커다란 눈망울 하나가 떼굴떼굴 구르고 있다.
늦봄의 향기에 취해 까무룩 잠이든 모양이다. 근데 이걸 어쩌나 시원한 볼이야 씻으면 되지만 옆머리를 스치고 지난 자국은 어쩔 것인가? 하늘을 향해 불쑥 솟은 머리칼은 근 3일이나 지나야 되돌아올 것인데! 내일 학교에서 동영이는 "천방에서 소랑 퍼질러 잣다"고 놀릴 것인데...! 미움이 한량없어 주먹을 불끈 쥐어 콧잔등을 힘껏 쥐어박지만 벌써 파리가 있나 태연하다. 오히려 때린 손이 더 아파 얼굴을 찡그리는데 “푸~르르”고개를 흔들다 내려다보는 눈 속에 내가 누워있다. 내 눈 속엔 소가 있을 것이다. 재차 커다란 입이 입맛을 다시며 다가들자 화들짝 놀라 바라보는 소의 눈에 산영이 비치는 아래로 조그마한 초가집에선 뽀얀 연기가 오른다. 이제 집에 가자는 듯 몸을 돌리는 둥근 어깨 너머로 된장 끓는 냄새가 구수한 봄이다.
봉화를 가는 길목에서 “워낭소리 촬영지” 안내판을 보고는 불문곡직 길을 잡았다. 한참을 달리다 뒤돌아 오기를 반복하다 포기를 했다. 분명 안내판을 따라 갔건만 찾지를 못했다. 농촌에서 자란 탓에 텔레비전을 통해 본 시골풍경이 낯설지가 않아 호기심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아쉬움만 가슴에 품고 돌아 나왔지만 궁금증은 늘 있어서 어떤 이야기 끝에 사연을 듣게 되었다.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로 30여 년간을 키워온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소의 나이가 30살이면 인간의 나이로 치자면 근 200여 살이다. 늙어서 힘에 부칠 법도 하건만 할아버지가 부르면 싫은 내색없이 따라나서는 소란다. 할아버지도 소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지기가 된 것이다. 가난한 농촌에서 재산목록 1호로 내세워 살림을 늘리기에 바쁜데 가족처럼 평생을 돌본 끝에 천수를 다하자 우총을 만들었다. 뭇 사람들은 때 묻지 않은 할아버지의 삶과 소와의 의리에 잔잔한 감동을 느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각박한 세상살이에 잠깐이나마 마음의 풍요를 느꼈던 모양이다.
지금도 영화의 잔영이 눈에 선하다. 소가 앞장을 서고 할아버지가 뒤를 따르는 모습에서 자갈밭을 일구시던 선친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 아름다운 모습과 명장면들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깨어진 탓에 촬영지를 찾는 길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다큐멘터리 치고는 히트로 290여 만명이 관람한 영화다. 영화에 반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안고 촬영지를 찾았다. 순수한 마음에서 할아버지와 소의 삶을 느끼며 돌아본 사람들이 대부분인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 얼마를 받았어요”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더니 자식들을 싸잡아 불효자로 만들어 갔던 모양이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의 한때 “내 자식을 내가 때리는데 왜”하던 시절, 남이 내 자식을 때리면 참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할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이 아들딸들을 들먹이며 불효자를 만드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생활상을 보노라면 집은 허름하고 의복은 남루해 보일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느끼며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허름하게 보이는 할아버지의 집은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5성급 호텔보다도 아늑한 보금자리요 땀에 절어 파리가 달려들망정 할아버지가 입고 계시던 의복은 곤룡포 못지않은 입성이다. 머리가 파묻힐 정도로 푹신한 베개는 작은 나무토막일망정 목침에 못 미치고 비단금침이라 침대에 깔아놓은 이부자리는 돗자리위에 깔린 무명이불만 못하다. 그런 아늑하고 편안한 삶을 도시의 삶에 비유하여 비난한 것이다. 그것은 시골생활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음 이해지 못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파리가 앉은 밥이 꿀처럼 단 것은 한평생을 안빈낙도하며 마음 편하게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소라고 다를까? 할아버지만 옆에 있으면 거친 지푸라기를 씹더라도 배가 부르고 마음이 편하고 그저 즐거웠을 것이다.
도시생활이 농촌생활에 비해 풍족하고 넉넉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평생을 땅을 벗 삼아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눈에 도시는 삭막하고 답답할 뿐이다.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어 잠시 그리워할 뿐 마음은 늘 집과 땅이 있는 시골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시고 못 모시고, 효도와 불효라는 단순한 논리로 따질 일은 아니다.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여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몸이 늙었다고, 말이 어눌해진다고, 생활이 조금 미숙하다고해서 젊은이들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주관적인 면에서 무엇이 진정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내가 아닌 그분들의 삶에 있어야 한다.
돌아가신 선친께서도 아흔을 넘기신 이후에는 대구에서 겨울을 난 후 봄이면 시골인 안동으로 가셨다. 굽은 어깨와 불편한 다리는 물론 오지마을에 서너 집만 있는 곳이라 식사는 물론 식수와 난방 등등 모든 것이 불편해 보였다. 형님의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시골생활을 접으라고 여쭙지만 아버지께서는 늘 어림없는 소리로 치부했다. 날씨가 추워지고 처음 대구로 올라오실 때는 잠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달력에서 봄을 기다리신다. 소한을 꼽고 대한을 기다리다가 입춘이 가까워지면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신다. 하루만 또 하루만 차일피일 미루어 보지만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면 기어이 가신다고 고집이시다.
인근시장에서 상추씨와 고추씨 등등 장을 푸짐하게 보신 아버지께 “그걸 언제 다 가뀌어요”하면 “내가 다 못 먹으면 이웃에서 먹고, 고라니도 먹고, 먹을 사람 없을까봐”하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행복은 진정 마음에 있는 모양이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일지라도 내가 있을 곳에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기에 시골로 가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넘쳐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