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 그 3년이라는 시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지내온 사람이 있다. 반평생을 전통한복을 지으며 그 맥을 이어온 사람. 스물다섯, 언니의 권유로 시작한 한복이 천직이 될 줄은 몰랐다는 ‘임현정 우리옷’의 임현정(59) 한복 디자이너. 지금도 한복에 빠져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디자인 출원을 하는 그에게 한복과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을 들었다.
◆ 스물다섯에 만난 한복 이야기
임현정 씨가 청송군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언니의 연락을 받았다. 네 성격이 차분해서 한복과 잘 어울리는데 서울 와서 본격적으로 한복을 공부할 생각이 없느냐는 거였다. 따분한 일상에 권태로움을 느끼던 시기, 사표를 내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 스물다섯이었다.
언니는 당시 서울 강남 논현동에서 한복연구소를 하고 있었다. 자기 밑에서 배우기보다 정식으로 학원에 등록하고 다니기를 권했다. 그렇게 낯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배운 것은 생활한복 디자인이었다. 몇 년을 한복을 배우고 조금씩 디자인에 눈 뜰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나 대구로 내려왔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한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전통한복에 대한 열망이 커져만 갔다.
◆ 기술을 배우기 위해 기능경기대회에 도전
당시만 해도 한복기술은 쉽게 배울 수도 없었다. 도제 형식으로 대물림하는 한복기술을 배우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기능경기대회’였다. 수많은 한복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전통한복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한다고 하자, 가르치던 스승님은 기막혀했다. 10년만 도전하면 20가지 정도의 기술은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예상대로 그대로 들어맞을 줄, 그땐 알지 못했다.
‘지방기능경진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재료목록’에 나온 몇 마, 몇 마를 보고 어림짐작으로 저고리인지 바지인지 두루마기인지 등등을 계산해야 했다. 지방경진대회를 통과하면 두 가지, 떨어지면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첫해 경주에서 열린 대회는 ‘원삼’이었다.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한 가지 기술을 배우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대회를 거치며 두 가지씩 기술을 익혀나갔다. 2015년 울산에서 열린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장옷’으로 동메달을 받았다. 그렇게 10년 동안 19가지 기술을 익히고 ‘기능경기대회 도전기’는 막을 내렸다. 다른 사람은 메달을 따기 위해 도전하지만, 내게는 전통한복 기술을 배우기 위한 도전이었다.
◆ 전통한복에 편리성 더한 디자인
전통한복의 맥을 이르면서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고 싶었다. 한 대학교의 졸업식 한복을 맡으며 바지저고리에 지퍼를 달고 허리에 고무줄을 넣어 새로운 시도를 했다. 돌아온 결과는 ‘반품’이었다. 이게 무슨 한복이냐는 항의였다.
그만둘 수 없었다. 같은 디자인으로 가족 한복을 만들었다. 입어본 사람들은 편리하고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입소문이 나며 기존 한복을 들고 와서 이렇게 수선해 달라는 사람도 늘어났다. 전통한복에 디자인적 요소를 더한 시도가 3년 만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코로나 시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코로나가 닥치면서 강의도 접고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가만있을 수 없었다. 여성회관에서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자투리 천을 이용해 쉴 새 없이 마스크를 만들었다. 내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재봉틀을 돌렸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나누고, 그 짧은 휴식은 나를 되짚어 보게 했다. 다양한 소재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쌍깃 두루마기’로 디자인 등록을 하고, ‘양면 치마 제작’으로 디자인 특허를 받았다. ‘한복산업기사 자격증’도 땄다.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쌍깃 두루마기를 보고 예쁘다고 주문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2022년 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되어 상도 받고, 패션 분야로 ‘제15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로 위촉장도 받았다.
작년에는 단독 패션쇼를 포함해서 6번의 패션쇼를 진행했다. 잠자는 서너 시간을 빼고, 꼬박 일에 매달렸다. 이 디자인에는 어떤 원단이 어울릴지 찾아가는 시간이 즐겁다. 한계를 짓지 않고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서 우리 전통한복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일이 행복하다. 특히 시니어모델과 한복은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연륜이 드러난 자태로 궁중복부터 당의, 평상복을 입고 런웨이를 누비는 시니어모델을 볼 때마다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여전히 전통한복에 현대적 디자인 요소를 접목해서 편하면서 아름다운 한복을 만드는 것이 꿈이자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