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발전하고 생활 수준도 올라가면서 집마다 승용차가 없는 집이 없다. 이제는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었다. ktx가 생기면서 서울에서 대구까지 두 시간도 안 걸린다. 택배로 하루 만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배달도 된다. 편의점에 가면 간편식이 입맛대로 진열되어 있다.
이렇듯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들어오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잃어버리는 것도 많았다. 삶에서 제일 중요한 건강도 잃어버렸다. 걷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운동량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뗄 수 없는 자연이라는 보물에서도 멀어졌다. 기계와 가까워지면서 인간관계도 메말라졌다.
그저 빠르기만 한 현대 문명에 지치고 피곤해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다시 '느림의 미학'에 관해 관심을 가진다. '걷기운동'에 대한 관심이다. 느리기에 얻는 것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되새김이다. 원래 인간은 빠름이 주는 쾌감보다는, 느림의 미학에 더 가까운 정서가 있다. 그건 원초적 본능이 아닐까.
빠른 기계에서 벗어나 천천히 걸어보자.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말자. 걸을 때만큼은 휴대전화도 끄자. 지나가는 길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걸으면서 보이는 것은 승용차 안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느리기에 보인다고 표현함이 옳다. 느림의 수확이다. 승용차의 작은 창밖으로 얼핏 스쳐 가던 풍광도, 걸으면 오롯이 나에게 다가와 안긴다. 지나는 길마다 내가 주인이다.
야외에서 걸으면 더욱 좋다. 봄이 되면 온갖 풀꽃들이 길섶에 도열 호위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친구가 되어 땀을 식혀준다. 가을엔 단풍잎이 떨어지며 옷자락에 살포시 감겨온다. 다랑논에서 익어가는 황금빛 벼도 그 순간은 온전히 내 것이다. 겨울엔 신발을 악기 삼은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노래한다.
최근 미국 의사 협회지에 '미 국립 암 연구소'가 주도적으로 수행한, '걷기와 장기간 사망률과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연구에서는 40세 이상 미국인 4,840명을 대상으로 몸에 속도계를 부착시키고 일주일간 매일 몇 보를 걸었는지 조사한 후, 사망률을 10년에 걸쳐서 분석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의 평균 걸음 수는 매일 9,124보였는데, 하루에 4,000보 미만 걷는 경우 1,000명 중 사망자가 76.7명꼴이었다. 4,000~8,000보 미만 걸음을 걷는 경우는 21.4명으로 낮아졌다. 8,000~1만 2,000보 미만 걸음을 걷는 경우는 6.9명으로 더 줄었다고 한다. 그 이상을 걷는 경우는 4.6명에 불과했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걸음은 질(質)이 아니라 양(量)이고, 걷는 속도보다 얼마나 걷는지가 장수를 결정한다고 했다. 빠르게 걷기만을 강조하던 고정관념을 깨는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시니어들이여! 이제부터라도 승용차를 버리고 걷자. 지팡이를 들어도 된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