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대구 수성구 성 김대건성당 여성신자 50여 명은 군위군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으로 '옹기피정'을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의 호인 옹기는 신앙 선조들의 꺾일 줄 모르는 신앙심이자 부모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해석되곤 한다. 또한 투박스럽지만 소박한 멋과 정취가 배어 나오는 질그릇 같은 삶을 추구하는 추기경의 인생관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옹기피정'이란 곧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신앙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인 것이다
해마다 사순절이 돌아오면 사순묵상순례를 떠나는데 올해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이곳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이 날도 심한 황사와 찬바람이 불었지만 신자들은 산마루턱에 행렬을 지어 십자가의 길을 바쳤다.
이 날 순례의 핵심은 최광득 신부의 옹기피정에 대한 강론에 이었으며 모두들 이 강론에 푹 빠져 들었다.
옹기라고 당신의 호를 지으신 김수환 추기경은 박해를 피해 옹기를 구워 생계를 이어가며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모습과 옹기를 만들고 팔던 선조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옹기처럼 좋은 음식도 나쁜 오물도 모두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려고 노력했으며 또 그렇게 생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청하지만, 우리가 져야 할 매일의 십자가는 하느님께 선뜻 청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련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옹기를 만들기 위해 양질의 흙과 숙련된 장인, 그리고 옹기가 구워지는 강한 불길, 옹기를 식힐 서늘한 바람, 물이 필요하다. 흙은 우리 자신이고, 숙련된 장인은 하느님이며 강한 불길은 우리를 단련하고 성장시키는 시련이고, 서늘한 바람은 성령의 인도함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하느님은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좋은 흙을 찾아내어 우리 민족의 어려웠던 시대의 불길로 단련하고 성령의 바람으로, 사제로, 주교로,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으로 세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그릇으로 만들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당신을 칭찬하는 사람들,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들, 그런 모든 사람들을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작년 3월 축성식을 한 이 공원에 작년에만 4만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찾았다고 한다.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년이 지났고 많은 사람이 기억할까 의문을 지녔지만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개신교 신자, 불교 신자, 무신자 등 종교적 색채와 상관없이 꾸준히 찾고 있었다. 꽃도 나무도 없는 이곳을 무엇 때문에 찾느냐는 물음에 "좋은 분인데 와 봐야죠"라며 당연한 듯 대답한다. 추기경의 모습을 본떠 흙을 빚어 만든 작은 조형물을 방문객들마다 안아준다고 한다. 사진도 신기하게 잘 찍힌다는 말에 모두 웃었다. 다소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손을 잡고 공원을 찾은 가족들의 모습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피정 후 돌아오는 내내 추모 벽의 글귀가 가슴을 아리게 요동치게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고 내 주위 모든 사람은 기뻐했다. 내가 죽을 때 나는 웃고 다른 사람은 슬퍼하는 삶을 살게 해 주소서."
아! 나도 내 주변사람에게 눈물짓도록 살 수 있는 삶을 살자. 계속 생각나서 울도록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옹기 같은 사람이 되길 그 분의 당부처럼 언제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을 위해 기도한 적은 있었던가. 그 분처럼 '네' 라는 한마디도 어렵고 우리 안에 잘 숙성시켜 내놓는 데는 점점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옹기피정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처럼 하느님의 뜻과 좋은 향기로 잘 받아들이는 옹기같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세상은 옹기같은 사람을 더 필요로 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