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4일 노르웨이의 빙하를 보러 가는 도중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잠시 관광했다. 시내에는 자전거 통행이 무척 잦았다. 인도, 차도, 자전거 도로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고, 자전거 전용도로에다 자전거도 신호를 받아 이동하는 게 특이했다.
코펜하겐의 늬하운 운하는 생각보다 폭이 좁았지만, 운하 주변에 형형색색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건물 보수공사는 해마다 돌아가며 몇 채씩 한다고 한다. 그중에는 안데르센이 집세를 내지 못해 이집 저집 옮겨다니며 살기도 했다고 하니, 유람선을 타는 동안 마치 동화 속 상상의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유람선을 타고 넓은 곳으로 나가면 시 청사, 덴마크 왕립 오페라하우스 등 시가지의 일부를 볼 수 있는 탁 트인 곳이 나온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상 앞에서는 생각보다 동상의 크기가 작아 실망하였다.
유람 중 나지막한 다리 근처를 지날 때, 갑자기 선장의 고함이 몇 차례 들렸다. 우리 일행을 향해 무척 화난 표정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머리가 다리에 받칠 위험도 모르고 모두 일어서서 사진 촬영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란다. 꽤 많은 작은 다리들이 수면에서 그다지 높지 않았다.
코펜하겐 시내를 둘러본 후, ‘DFDS SEAWAYS’ 크루즈를 타고 2인용 선실에서 1박하며 노르웨이로 갔다.
크루즈 안에서는 일품요리 레스토랑, 오메가 피쉬 오일 매장, 샴페인 세이버링, 풀장과 카페가 있는 버블존 등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밤바다와 거의 백야(white night)에 가까운 황홀한 새벽하늘을 볼 수 있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크루즈 옥상에서 보냈다. 북해의 기온이 낮아 두툼한 겨울 패딩 차림에도 약간의 추위를 느껴 선실 안과 밖을 가끔 들락거려야 했다.
노르웨이는 여행 일정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주었다. 그룹 아바(ABBA)의 애니가 태어난 나라여서 이후 찾은 스웨덴으로 떠날 때까지 이어폰을 통해 이들의 노래를 비틀즈의 것보다 더 자주 들었다. 특히 맘마미아, 워털루,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등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바(ABBA)의 A 중 하나가 애니프리드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의 이니셜이고, 젊은 한 때 그들의 노래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골을 지나 노르웨이의 협곡을 달리는 플롬바나(Flamsbana) 열차를 타러 갔다. 플롬 노선은 플롬에서 미르달(Myrdal)까지 20km 궤도를 1시간 동안 느린 속도로 달리면서 인상적인 노르웨이 산악 풍경을 보여준다.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강이 흐르고, 눈 덮인 산의 가파른 절벽에는 실타래처럼 흩날리는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플롬 계곡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아우를란즈 피요르드의 장관을 감상했다.
종착역인 미르달까지 가기 전에 잠시 열차에서 내려 구경도 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곳이 있다. 청아한 하늘 아래 계곡의 잔설 사이로 폭포수가 흩날리고, 건너편에는 관광객을 위해 붉은 옷을 입은 요정들이 멀리서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연출을 한다.
5월 초임에도 아직 많은 눈이 쌓여 있는 미르달 종착역에서 관광객들은 설산, 푸른 하늘, 플롬 열차를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남겼다.
플롬 계곡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뒤로하고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24.5km의 라르달 터널을 지나 밝은(?) 밤에 시골 마을 숙소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라르달 숙소의 창문 커튼을 열자, 마을은 맑고 서늘한 공기 속으로 이름 모를 새들과 폭포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잡담을 즐기며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약 한 시간 반을 이동하여 만헬러-포드네스 구간 유람선을 타고 노르웨이 관광의 꽃이자 이 나라에서 가장 긴 송네 피요르드에 도착했다.
송네 피요르드를 따라가는 동안,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은 폭포가 이어지고 빙하 녹은 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내리는 모습에 벌린 입을 한참 동안 다물지 못한다.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비경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산기슭에는 붉고 푸른 지붕을 가진 깔끔한 별장들이 이 나라가 부국임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2018년 8월 세계은행(WB)은 1인당 GNI에서 영국 자치령인 맨섬, 스위스에 이어 노르웨이(7만5천990달러)를 3위로 발표했다.
기억 속에 큰 충격을 남긴 송네 피요르드의 황홀함을 간직한 채, 버스로 3시간 반을 이동하여 뵈이아 빙하를 보러 갔다. 뵈이아 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푸른 빙하로 불리는 요스테달 빙원의 한 자락에 있다.
지금까지 흰 눈과 얼음만 봐 왔지, 푸른(에메랄드) 빛을 띠는 빙하를 처음 본다는 생각에 무척 가슴 설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름에 녹는 눈보다 겨울에 내리는 눈이 많아 겹겹이 쌓이면, 하층부에서 눈이 얼음으로의 재결정 작용을 받게 된다. 이 얼음 덩어리가 중력을 받아 흘러내리면서 U자 모양으로 골짜기를 깎아 송네 피요르드와 같은 빙하 계곡을 만들게 된다.
뵈이아 빙하 근처에는 빙하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박물관이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
1년 만에 이곳에 다시 왔다는 현지 가이드는 “지난해 5월에는 빙하 속에 검은 구멍 부분이 없었는데, 빙하가 더 녹아 검은 구멍이 새롭게 뚫렸다”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뵈이아 빙하가 지구온난화로 짧은 기간에 녹아버리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북유럽의 5월 초인데도 한국의 봄과 같은 날씨여서 처음엔 여행하기 좋아 무척 즐거워했지만, 녹은 빙하가 만들어내는 웅장한 폭포와 환상적인 피요르드의 아름다움에 도취하기만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점점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심각한 고뇌에 함께 빠져야 옳을까? 잠시 갈등 속에 파묻혀 본다.
아름다운 동화 속 그림 같은 현장에서는 즉답하기 매우 어렵다. 여행하는 동안 줄곧 황홀경에 빠져 눈에 보이는 현 세계와, 지성으로 알 수 있는 실재 세계를 따로 구분할 수 없었다.
ABBA의 ‘I have a dream’ 가사에 나오는 천사(angels)가 생각난다.
(중략)
I have a dream, a fantasy
to help me through reality
and my destination makes it worth the while
pushing through the darkness still another mile
I believe in angels
something good in everything I see
I believe in angels
(중략)
난 꿈과 환상이 있어요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그리고 나의 목적지는 그럴 가치가 있어요
아직 어둠을 헤치고 가야 할 길이 많지만 말이에요
난 천사를 믿어요
내가 보는 모든 것에서 좋은 점을 말이죠
난 천사를 믿어요
이어폰으로 ABBA의 노래를 들으며, 여행 내내 설산, 폭포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빛에 넋을 놓았던 추억들을 고스란히 남기고 스톡홀름(스웨덴)으로 가기 위해 다시 짐을 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