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태원이 군의관으로 임관된 뒤 전방으로 떠나던 날 청량리 서울사대 운동장에서 병주는 녹색 군용버스 속의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여자들은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또 어떤 여자들은 종종걸음을 하며 떠나는 군 버스 창문을 두들기며 얘기를 걸기도 했다. 태원은 묵묵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고 그녀 역시 떠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봄이 한창 무르익는 계절이었다. 벚꽃은 이미 졌어도 덕수궁 모란은 흐드러지게 피고 있는 그런 계절이었다. 꽃다운 이별의 말 한마디없이 그들은 말 없이 헤어졌다.
태원은 자라면서 부모의 공장에 식모나 직공들로 근무하는 여자들을 많이 봐왔다. 그런 여자 중에서도 자신에게 정을 갖고 돌봐주는 여자는 그의 어머니밖에 없었다. 그런 어머니도 공장을 챙기느라 아들을 살갑게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이런 성장 배경 탓인지 그는 항상 여성들과의 관계 형성을 간절하게 원하면서도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병주는 정도 많고 감정에도 솔직한 여자였다. 하지만 태원에게 감정 표시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아직도 오빠나 오빠 친구라는 굴레를 완전히 벗어 버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방으로 배치되기 전에 병주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하였다.
“전 오빠가 군복 입으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어떻다는 이야기야?"
시비를 걸듯이 태원이 물었다.
“저는 오빠가 만날 세상 욕이나 하고 수염도 깎지 않고 항상 점퍼만 입고 다니길래 사람 자체가 그렇게 삐딱하고 퇴폐적인 줄로만 알았죠.”
"그런데?”
"그래서 저는 오빠 같은 사람이 군복을 입으면 굉장히 이상한 모습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임관식 날 내가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주며 정복 입은 오빠를 보니 너무 멋있게 보여 가슴이 다 뛰더라고요. 전에 자퇴서 썼을 때 그 길로 군에 입대했으면 장군이 되었을 것 같네요.”
그녀는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동그란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워낙 여성스러운 성격이지만 오빠 친구라는 오랜 습관을 깨지 못하고 조곤조곤 말을 했다. 그녀는 수줍어하는 수동적 성격의 여자이면서도 자주 전방으로 태원을 면회 왔다. 어떨 때는 책도 사 오고 어떨 때는 과자도 사 왔다. 한 번은 커다란 베개를 사 왔는데 태원은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 하고 한동안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본 일도 있다. 그 베개를 함께 베자는 뜻일까? 아니면 편안하게 자라는 의미일까? 하긴 그는 한동안 베개도 없이 책을 베고 잤으니 말이다.
태원이 청량리에서 군용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기도에 있는 65사단이었다. 거기서 일주일 동안 훈련을 받고 다시 연대로 배속받아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데 황톳길 신작로에는 보병들의 긴 행군 행렬이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행렬은 우태원 중위가 배속되어 가는 71연대 2대대 병력의 행군이었다. 그때는 그 행군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도 몰랐지만 푸른 제복의 사나이들이 행군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어릴 때 전쟁을 겪으며 자주 보던 광경이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피 속에 공격적인 남자의 무의식이 헤엄쳐 다녀서인지는 몰라도 우 중위는 행군하는 군인들을 보면 감격해서 눈물이 다 나왔다.
71연대에 세 명의 군의관이 도착했다. 빨리 연대장 신고를 마치고 곧장 전방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첫날 연대장에게 신임 군관 셋과 잔류한 한 명 등 넷이 신고하였다. 연대장은 이들이 신고도 다 마치기 전에 다짜고짜 화를 내었다.
"이 새끼들, 이게 신고야! 이런 기초도 안 된 새끼들이 어떻게 장교로 임관되었지?"
마치 짐승을 다루는 듯한 목소리로 고함쳤다. 인사장교는 아마도 경례 자세가 잘못되어 그런 것 같다며 지원 중대장을 불러왔다. 그 사람의 제식 동작이 전 연대에서 가장 모범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차렷 자세와 경례 연습을 하며 인사과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신임 군의관들의 신고는 계속 연기되었다.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따로 있을 곳도 없어 이곳저곳 쫓겨 다니며 경례 연습을 하고 있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원래 군대가 이러한 곳인지 아니면 정말 군의관들의 제식 동작이 잘못되어 그런 건지 그들은 확실한 잘못도 모르는 채 마냥 연대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일주일을 그러던 중 갑자기 인사장교가 그들을 불러 배속될 부대를 불러주었다. 이미 작년에 연대에 배속되어 있던 정 대위는 연대 의무중대장으로 발령이 나고 나머지 금년에 입대한 세 명의 군의관은 전부 대대로 배속 명령이 났다. 그렇게 귀중하게 여겨지던 신고식은 온데 간데 없었다. 경례 동작 운운한 것은 질 나쁜 보병들의 부하 길들이는 유치한 방법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신임 군의관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배속받은 대대로 재빨리 흩어져 갔다.
우 중위가 전출 간 2대대는 얼마 전 미군들이 철수한 부대를 막사로 쓰고 있었다. 부대는 파평산 아래에 있었는데 막사가 전부가 콘세트로 되어 있었다. 미군이 있을 때는 그들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던 모양인데 한국군이 들어오면서 군데군데 뜯어내고 고치는 바람에 부대가 넓기는 해도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가 입대 전 생각하던 군대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한동안 정 붙일 곳이 없었다. 더구나 부대 병력 전부 임진강 변으로 장기 공사에 동원되어 가 버린 탓에 텅 비어 있으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대에서 또다시 대대장 신고를 해야 한다며 또 기다리란다. 가는 곳마다 신고식 타령이다. 텅 빈 의무대에 기다리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의무대에는 몇 달 전 월남에서 돌아왔다는 박 중사가 선임하사로 있었고 공병무 일병이 텅 빈 의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며칠 뒤 임진강 공사현장에서 대대장이 부대 본부에 돌아왔다. 연대장보다는 시원한 사람이었다. 신고한다고 부대장 방으로 갔다.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우태원에게 대대장은 그냥 앉으라고 했다. 공부하다 전방에 오니 얼마나 힘들겠냐며 어깨를 두드려주며 신고는 하지 말고 이야기나 하자며 따뜻하게 그를 격려해주었다. 다음 날 우태원 중위는 2대대가 주둔하고 있는 임진강 숙영지로 갔다. 가는 길에 그는 우체국에 들러 어젯밤에 쓴 편지를 이병주에게 보냈다.
“병주 씨에게
참 오랜만이라고 느껴지네요. 호칭도 어색하군요. 내가 후보생 때 우리가 자주 편지를 주고받긴 했지만 이곳 전방에 오니 그런 사실들이 마치 오래전 어떤 딴 나라에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네요. 우리 부대 위치는 경기도 파주군인데 더 자세하게 말을 해줄 수는 없소. (군부대 규정상 위치는 알리지 못하게 하네요)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 위치를 알려주도록 할 게요.
부탁이 있어 급히 편지를 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 부대가 하도 삭막하여 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군요. 그러니 이 시기에 뿌릴 수 있는 적당한 꽃씨를 찾아보고 부쳐주기 바랍니다.”
편지라고 평소 쓰지도 않던 존댓말을 쓰니 무척 어색하였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다 쓰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다. 우태원이 자대에 와서 처음 한 일은 꽃씨를 뿌리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