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는데 대구에서는 3월8일 서문시장 장날 거사가 일어났다. 대구 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대구 출신인 이갑성의 이름이 세겨져 있다. 대구에서는 33인중 최연소자 이갑성을 비롯해서 기독교계의 중심인 이만집 목사, 김태련 조사, 그리고 백남채, 김영서, 이재인 등 교사들이 주도 했다.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성경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데, 당시 청라언덕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집결장소인 서문시장으로 이어주는 지름길이 되었고 비밀통로 였다. 지금은 숲은 사라지고 '90계단길' 이라고 불리는 만세운동길로 알려지게 되었다.
학생들과 장꾼들은 비밀리에 3월8일 1시까지 집결지인 서문시장(큰장) 지금의 대구시 중구 섬유회관 건너편 옛 동산파출소 앞 광장이다. 지금 그곳에는 표지석이 있다.
90계단에는 365일 태극기가 걸려 있고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강씨네 소금가게 앞(옛 동산파출소)에 모인 사람은 순식간에 800여 명이 넘고, 독립선언서는 김태련 조사에 의해 낭송 되고 만세소리는 천지를 진동했다. 일본 경찰의 완강히 저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때 농민 안경수가 태극기를 꽂은 깃대로 경찰이 탄 말의 엉덩이를 찔러 말은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 혼란의 틈에 선두 행렬이 전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세 행렬은 동산교를 지나 본정(현 감영공원길)에서 현 중부경찰서로 향했는데 일본 경찰은 총과 칼로 저지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만세운동길에는 노면표지로 만세운동길을 알려 주고 있다. 날씨가 조금 차지만 코로나 때문에 거리 두기를 하면서 만세운동길을 한번 걸어보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