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 살고 있다. 변화라는 게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두려울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그것에 적응해가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의 삶이다. 흔히들 코로나19가 미증유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사실,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누렸던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에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방문하고 하는 것에 제약을 받으니 부득이 한 경우가 아니면 소위 말하는 집콕이다. 그러다 보니 TV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눈이 자주 가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아시아 지역의 오지마을이나 소수민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평소 같으면 무관심하게 넘어갔을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예전에는 저렇게 살아왔지, 저런 방식으로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갈까?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청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그렇게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참 편안하게 느껴졌다.
부탄이 생각난다. 한때 우리는 부탄의 행복지수를 많이 이야기한 적이 있지 않는가. 국민총생산이 높지 않음에도 국민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라고. 아시아의 오지마을 사람들도 그들의 생활을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부탄만큼 행복지수가 높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주어진 생활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삶의 지친 모습보다는 행복이 더 커 보였다.
문득 그들의 삶이 보고 싶어진다. 내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사람 냄새 나는 삶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발전이나 개발에 매몰되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경쟁에 찌든 삶을 살아오다 보니 더 나은 것을 향해 끊임없이 질주해 왔다. 아마 코로나19도 우리 인간의 개발에 대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인간의 자연훼손이 전염병을 유발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그렇다고 본다면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코로나19도 인간 탐욕의 산물이다.
그래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오지마을 사람들이 그립다.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그들에게 가고 싶다. 그들을 통해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악몽에서 깨어나면 그들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다. 내 생각이 사치일까?
김연화(대구 중구 원대로·가톨릭신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