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떤 색깔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노란색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시의 봄은 개나리꽃으로 시작하고, 시골마을의 봄은 산수유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산속의 봄은 생강나무꽃으로 시작하니 말이다. 산에서 봄을 알리는 꽃 중에는 연분홍색의 진달래도 있지만 노란 생강나무꽃이 조금 더 빨리 핀다. 매년 봄이 다가오면 생강나무꽃을 만나기 위해 봄맞이 산행을 한다. 올해에는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이제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오늘은 아침 햇살이 맑고 밝다. 산오르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다. 아직은 무채색을 띠고, 알싸한 봄바람이 있지만, 형광등처럼 빛나는 생강나무꽃이 텅 빈 숲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생강나무는 우리가 흔히 아는 생강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단지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으면 생강만큼의 진한 냄새는 아니지만 은은한 생강향이 나서 사람들이 생강나무라고 한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노란 동백꽃이 생강나무꽃이다. 동백처럼 열매로 기름을 짜 머릿기름으로 써서 강원도나 경북지방에서는 동백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따뜻한 남쪽의 진짜 동백나무 씨앗으로 짠 동백기름은 양반가 여성들의 고급스런 머릿기름이었다면, 산동백 기름은 서민가 아낙들이 주로 애용하였고, 민가에서는 등잔불을 밝히기도 하였으니 우리에게는 산동백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생강나무꽃의 꽃말은 수줍음이라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아직은 초록색이 거의 없는 깊은 산속의 향긋한 생강나무꽃은 수줍게 서 있는 소녀의 느낌을 준다. 우리는 매년 생강나무꽃으로 꽃차를 만들어 마신다. 찌고 여러 번 덖어서 만들어진 생강나무꽃차는 어떤 차보다도 부드럽고 맛있어서 애용하는 차다. 생강나무꽃차를 많이 마시면 꽃처럼 젊어진다고 해서 요즘 인기가 좋은 꽃차 중의 하나다. 또한 옛날부터 맑고 신선한 차라 하여 시제를 올릴 때 사용했다고 하니 좋은 것은 맞는 것 같다. 생강나무는 공기 맑은 산에서 혼자 자라기 때문에 꽃차 속에는 자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 모금 마시니 입 안 가득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봄 향기가 가득하다. 생강나무꽃이 많이 피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했는데 올해도 풍성하게 피었으니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아무렴 생강나무꽃이 많이 피었다고 풍년이 들겠느냐마는 그래도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리고 농사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도 풍년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