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율사가 관세음보살을 꼭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백일기도를 하고 있었다. 99일째 되는 날 얼굴이 사납게 생기고 한 쪽 눈과 한 쪽 팔과 한 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거지 같은 꼴을 하고 도량에 들어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자장 너 있느냐?".....‘얼른 나와 봐라’ 라며 큰소리를 지른다. 이에 상좌들과 불목하니(절에서 밥 짓고 물 긷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이 말리느라 애를 먹는다. 큰스님께서는 지금 기도 중이시니 내일 오십시오. 사정을 하고 달래느라 조용하던 도량이 순식간에 야단법석 난리가 났다. 이때 기도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가던 자장율사가 점잖게 말한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내일 다시 오시오’ 하며 자신의 방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그 거지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네 이놈 자장아 교만하고 건방진 중놈아 네놈이 나를 보자고 백일 동안 청해놓고 내 몰골이 이렇다고 나를 피해?’ ‘네가 이러고도 중질을 한다고?’라며 큰소리로 비웃으며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자장율사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나를 찾아온 보살을 외모만 보고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고 편협한 선입견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잣대질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바랑 하나만 메고 스스로 구도의 길을 떠나게 된다.
살다가 보면 스스로의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수호천사와 보살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다. 대체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에 의한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등으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려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는 사물이나 현상 또는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편견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생각으로 공정하지 못한 사고나 견해를 뜻하며, 선입견은 어떤 상황에 대해 미리 성급하게 판단하는 생각이나 견해를 가리킨다. 고정관념은 삶을 통한 경험에 의해 오래전부터 굳어져서 바뀌기 어려운 생각의 틀에 갇힌 자신의 판단 작용이다.
편견은 편파성과 불공정성에 선입견은 성급함과 섣부름에 문제점이 있으며 고정관념은 경직성과 닫혀 있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모습들은 늙어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특히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화 잘 내고 소리통 크고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는 고집불통의 노인들을 가리켜 젊은이들은 ‘꼰대’라고 한다. 원래 학생들이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쓰던 은어였지만, 지금은 자기의 경험과 직관을 우선시하여 오직 자신의 눈과 체험만을 굳게 믿는 사람으로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고정관념에 갇힌 노인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이제 ‘꼰대’일 수밖에 없는 늙은이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우려 하지 않고 자기 주관으로 남을 가르치려고만 한다. 또한 세상과 삶은 계속 변하는데 과거에만 집착한 나머지 과거의 틀에 맞춰 현재를 보려고 한다. 자기 생각은 고정시켜두고 세상이 바뀌고 상대가 바뀌기만을 바란다.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바뀌기를 바란다. 내 경험이 옳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자기 세계에 고립된 ‘꼰대’일 수밖에 없다.
늙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이 녹슬어서는 안 된다. 이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아직도 과거의 갑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갑질 오너로서의 꼴불견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변하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개방적 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