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가지 위의 포도를 따먹으려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어! 못 따먹는 걸 안 따먹는 것으로 남도 속이고 자기도 속는 ‘여우와 신포도’란 이솝우화를 현대판으로 재구성하여 한 여우가 천신만고 끝에 포도를 따먹게 되었다.그 포도는 정말 신 포도였지만 그래도 힘들인 노력이 아깝고 다른 여우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바람에, 신 포도라 말을 못하고 맛있는 표정을 지으며 먹다가 결국 위궤양에 걸리게 되었다는 이어령 박사의 “짧은 이야기, 긴 생각”에 나오는 ‘신포도 먹고 사는 사람들’이란 글의 요약이다. 우리는 아직도 위선, 겉치레, 체면 등으로 신포도 밑에서 목을 빼고 서 있지는 않는지 지신을 한번 돌아보자.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 몸을 맡기고 살다보니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남에게 보이는 자기 모습에 정성을 쏟다보니 자기는 버리고 남을 닮으려 애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모르는 것이 내 모습이다.
우리는 건강검진에서 의사의 진단으로 신체의 어느 부분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누구나 불길한 생각과 불면증, 식욕부진까지 겪으면서 몹시 걱정을 하고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며 결국 이것저것 검사를 받게 되고 처방과 함께 이상이 별것 아니라는 의사진단이 나오면 금방 새로 태어난 듯 안도하는 모습이 된다. 이는 지옥과 천당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맘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너무 매달리지 말자. 그리고 미래에 너무 집착하지도 말자. 지난 일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고 현재의 내 행동이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든다. 후회한다고 지나간 세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간 젊은 세월 되살릴 수도 없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남이 만든 게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든 것이다. 시간을 흘려보낸 후 아까워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 게 세월이다. 그런데 잘 사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되 진정 나답게 살아야 한다. 내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이란 타인지향이 아니라 권세, 돈 등 세속의 욕망이 신포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힌두교도들은 죽기 전에 반드시 갠지스강에 가서 몸을 씻는데 이는 평생 지은 죄를 씻기 위함이라고 한다. 몸을 씻는다는 것은 마음을 씻으려는 의미일 것이다. 흐린 거울로는 내 얼굴을 제대로 비춰볼 수 없듯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잘 알려면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남과 비교하는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혹자는 우리 인생을 남과의 비교를 죽기 전 까지 끝없이 이어가는 괴정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붕어빵이 아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키 큰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나’라는 존재는 지구상에서 오로지 하나뿐이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단 한번밖에 못살기 때문에 한없이 존귀하고 소중하고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근사하고 멋지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딱 한번 살고 가야할 딱 한번뿐인 ‘나’이다. 잘 살아야 한다.
이 나이에 남과의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남을 내 맘에 들도록 하려면 내가먼저 바뀌어야 한다. 차라리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