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국가의 재앙이다. 저출산 정책이 어느새 국가 재앙으로 위협받고 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1960~70년대에는 이런 표어가 전국 방방곡곡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임산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관공서 휴게소 공공주차장에는 임산부 전용 주차장까지 배려해 놓았으나 휑한 공간일 뿐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임산부를 본 날은 로또복권을 산다는 이가 있다. 마치 ‘돼지꿈’이나 ‘용꿈’을 꾼 것과 진배없다. 농으로 하는 말이지만 씁쓸함은 지울 길이 없다. 저출산 현실이 국가의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문제는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주변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 수만 봐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왔는지 알 수 있다. 경북 도내 초등학교 입학생과 졸업생 수는 급격히 줄었다. 2019년도 4월부터 12월까지 폐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출산이 없는 사회는 생산성이 없는 소멸하는 사회이다. 저출산은 국가 존폐와 직결된다는 얘기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국가경쟁력 또한 하락하고, 종래에는 국가재정에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낼 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가계구도가 좁아진 이 사태를 두고 ‘나 살아 있는 동안은 별일 없으니, 그저 입 다물고 있어야 하나’라는 걱정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뚜렷한 대책은 없다. 지자체나 정부에서도 무단한 노력과 인센티브 복지정책들을 많이 내어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종교계에서도 다산 자녀 입학금 등, 지원 이벤트들을 내어놓았지만 찻잔 속 미풍이었다.
저출산 원인은 일자리와 직결된 가정의 생활비이다. 요즘 자녀 양육비가 만만찮다. 신혼부부의 주거 주택 문제와 수억원이 들어야 졸업한다는 사교육비 부담이 자녀 출산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리고 삶의 질이 향상됨에 따라 다산 부모로서 평생 헌신하기보다는 자신의 존재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높다.
필자의 견해는 이러하다. 다자녀 가정은 여느 유공자 못지않은 국가 유공자이다. 국위를 선양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자랑스러운 유공자이지만 다산(多産) 가족은 향후 국가에 이바지하는 인프라를 제공하기에 그에 대한 예우가 필요하다. 다산 가정에 경제지원 대안을 ‘사회적 어젠다’로 만들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밑거름을 많이 하면 그 거름이 어디로 가겠는가! 많은 열매로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