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한 중세의 그림이 펼쳐지는 곳
지극한 아름다움 앞에 느낌도 생각도 멈춰
4월의 끝이 가까운데도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런 날씨가 평균적인 독일 날씨인지 이상기온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의 1월 말 즈음 날씨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서며 두꺼운 점퍼에 방한 모자로 단단히 채비하고 ‘드레스덴역’에 도착했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더니 눈송이도 섞인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외투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있다. 중앙역 앞에서 노란색 트램을 타고 두세 정거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니 저 멀리 다리 너머로 문득 무지개가 걸린다. 무지개 뜬 강변에 눈을 의심케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지나온 시간 속으로 뒷걸음치듯, 고아(高雅)한 중세의 그림 한 장이 먹구름을 배경으로 열린다. 지극한 아름다움 앞에서 느낌도, 생각도, 숨길조차 "뚝"하고 멈춘다.
뛰듯이 걸어 강변으로 올라선다. 거짓말처럼 먹구름 걷힌 하늘 위로 새들이 날아오르고 햇살이 비춘다. 남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물 위에 지상의 풍경이 거울처럼 비친다. 체코 쪽에서 흘러들어 독일 땅을 가로질러 북해 쪽으로 빠져나가는 1천km가 넘는 엘베강이다. 유유한 강물 위로는 유람선이 떠 있고 강둑 위에는 산책 나온 노부부와 몇몇 사람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발길은 자연스레 구도심을 찾아든다. 드레스덴의 랜드마크이자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식 건축물로 꼽히는 ‘프라우엔 교회(성모교회)’가 육중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광장 한복판에 서 있다. 18세기에 지은 건물로 가톨릭교회였으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로 바뀌어 200년 동안 신앙의 중심에 있었다. 1945년 2차대전 막바지 연합군의 대공습으로 고도(古都) 드레스덴이 초토화될 때 함께 무너졌다. 자세히 살펴보면 건물 곳곳에 검게 그을린 벽돌이 박혀 있거나 한쪽 벽면 전체가 검게 그을린 부분도 있다. 또 교회 옆에는 무너져 내린 벽면 한 덩어리가 길거리에 부서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아니 전시돼 있다. 과거를 잊지 말자는 뜻일 것이다.
전후 30여 년간 동독 지역이었던 시절, 동독 정부는 허물어진 교회를 밀어 버리고 주차장으로 만들어 종교적 상징물을 없애려 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으며, 결국에는 부서진 교회는 그대로 방치되었고 드레스덴은 쇠락해 갔다. 1990년 통일 직후 연방정부는 구시가지를 폭격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으며, 구도심 지역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이 계획에 의해 ‘프라우엔 교회’는 2005년에 복원되었다. 파괴된 지 60년 만이었다. 정부의 복원 의지에 시민들은 폭격으로 부서진 잔해들에 번호를 매겨 소중하게 보관해 왔던 벽돌들을 기부하고, 교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내놓고, 노인들은 앞다투어 지난 시절을 증언했다. 긴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노력해 온 그들의 복원 의지가 모여 아름다운 교회를 되살려냈다. 정갈하지만 기품 있는 실내에는 바흐가 연주한 오르간이 있다. 현대식 음향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이곳은 음악회와 음반 녹음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드레스덴을 가로질러 흐르는 엘베강이 내려다보이는 ‘브륄세 테라스’ 쪽으로 가면 신·구 도시와 아우구스투스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엘베강을 따라 작센 알프스 지역을 오가는 관광용 증기선을 탈 수도 있다. 여기서 구시가지 쪽을 바라보고 셔터만 누르면 어디서든 그림엽서가 되는 마법의 장소이기도 하다.
눈길을 돌리면 정면으로 ‘호프교회’가 나타난다. 꼭대기에 연녹색 청동탑이 있고 건물 위 3층으로 올려 지은 탑신과 지붕 위에는 성경 속 성인들 38명이 조각된 아름다운 가톨릭교회다. 18세기 드레스덴의 문화 전성기를 이뤄내 지금 드레스덴의 모습을 갖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2세’의 심장이 안치되어 있으며 많은 예술작품이 있는 궁정교회이기도 하다.
‘호프교회’ 옆 넓은 광장에는 ‘젬퍼 오페라 극장’이 위용을 드러낸다. 1841년에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오페라 극장으로 독일의 유명한 건축가 젬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바그너가 ‘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을 초연한 장소였고, 당대에 음향이 좋은 연주 홀로 소문나면서 젬퍼는 유럽의 많은 도시로부터 오페라 극장 건축 의뢰를 받게 되었다.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되었으나, ‘빈 국립도서관’에서 설계도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현재에도 뛰어난 음향으로 클래식 애호가들이 손꼽는 공연장이다.
‘호프교회’ 뒤편으로 구름다리가 있고, 잇대어진 건물이 ‘레지던트 궁전’이다. 약 400년간 군주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1945년 공습으로 파괴된 것을 재건해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실로 공개하고 있다.
‘레지던트 궁전’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큼 진귀한 소장품을 보려면 따로 ‘히스토릭 그린 볼트’관람권을 예약해야 한다. 예약을 해놓고 입장 시간에 맞춰 갔더니, 검색대를 통과하여 소지품은 로커에 보관하고 사진 촬영은 금지다. 8개로 나누어진 방에는 ‘작센 왕가’ 사람들이 다른 왕가로부터 받은 특별한 선물이나 기념일에 주고받은 선물 등 그야말로 진귀하고 놀라운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아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가구와 장식품,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보석함, 희귀한 인테리어 장식품들, 수많은 종류의 장신구들, 왕가가 소유해 왔던 정교하고 화려한 보석들. 18세기에도 귀족들만 구경할 수 있었다고 했을 만큼 귀중한 왕가의 보물들이었다.
궁전의 외벽을 따라 아우구스투스 거리로 돌아 나오면 1백m가 넘는 긴 벽면에 타일로 그린 거대한 벽화가 있다. 이곳이 바로 ‘군주의 행렬’이 그려진 벽면이다. 2차대전 당시 도시의 90%가 폭격으로 무너졌으나 이 벽면만 유일하게 피해를 보지 않았다. 1500년대부터 1876년까지 독일 작센 왕가의 기마행렬을 그린 벽화로 왕조 8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 그린 벽화가 소실되자 2만 5천 개의 ‘마이센 도자기’로 그려놓은 그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조의 연도와 가문의 이름, 문장이 그려져 있다. 연대가 바뀌면서 복식과 동행자의 모습까지 시대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여담으로 독일 사람들은 이 벽화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역대 작센 왕조의 영혼이 이곳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왕관 모양의 장식으로 유명한 바로크건축의 대표적인 궁전 ‘츠빙거궁전’은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출입이 되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츠빙거궁전’은 1709년에 착공하여 1719년 완공된 궁전으로 화려하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아쉬움을 남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이지 드레스덴은 멋진 도시였다. 여러분은 아무리 부자 아버지를 두었어도 내 말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기차를 타고 드레스덴으로 갈 수는 없다.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는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단 하룻밤 사이에,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그 도시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이 만들어지기에는 수백 년이 걸렸지만, 그 도시를 땅 위에서 날려 버리기엔 두어 시간이면 족했다. 1945년 2월 13일의 일이었다. 전투기 8백 대가 폭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허허벌판만 남았다. 몇 무더기 거대한 잿더미와 함께.....”
- ‘에리히 캐스트너’의 자서전 <내가 어렸을 적에> 중에서
알트 마르크트 광장으로 나가면서 시간을 보니 함부르크까지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고색창연하고 처연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도시를 거닐며 느꼈던 도시의 내력과 영광 그리고 폐허에서 일궈낸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인내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쿤스트호프 파사제’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갔다. 한국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처럼 오래된 건물들을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로 바꿔 놓은 곳. 건물의 오래된 벽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재밌는 장소로 변신하고 카페와 개성 있는 문방구, 옷 가게 등이 작은 뜰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즐거움이 묻어나는 예술적 시도의 공간이 구시가지와는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오늘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드레스덴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