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에 대한 인간의 욕구
금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매우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금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귀중한 금속 중 하나로, 최초로 사용된 시점은 기원전 6천 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문명에서 금은 주로 장식품과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등의 문명에서 신성한 상징이자 부의 징표로 여겨졌다. 부식되지 않는 특성과 아름다운 광택 덕분에 상징적이고 영속적인 가치가 있다고 여겨져 왔다.
금이 본격적으로 화폐로 사용된 것은 기원전 6백 년경 리디아 왕국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 화폐가 발명되면서 부터다. 이후 다양한 문명과 국가에서 화폐 및 교환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오랜 기간 국제 무역과 경제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금은 오랫동안 화폐의 기본 척도인 금본위 제도의 근간이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대부분의 국가가 금본위제를 폐기하면서 화폐로서의 직접적인 역할은 줄어들었다. 대신 가치 저장 수단, 즉 안전 자산으로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경제적 불확실성이나 인플레이션 시기에 자산 보호 수단으로서 많은 투자자들에게 선호된다.
미래에도 금이 주요 재화 척도로 계속 사용될지는 불확실하지만, 디지털 화폐와 암호화폐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적 발전과 경제 구조가 변하더라도 금의 물리적 특성과 오랜 역사적 중요성 덕분에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미래 경제에서 절대적인 척도로 사용될 가능성은 낮고, 다양한 새로운 자산 형태들이 주요 경제적 척도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금의 재화 가치가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증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금의 가격 변화를 직접 비교해야 한다. 1920년대 금 가격은 당시 금본위제 하에 미국의 금 가격은 온스당 약 20달러 정도였다. 2023년 기준 금 가격은 약 1,900~2,000달러를 기록하고 있어, 지난 100년 동안 금의 재화 가치는 약 90배 이상 100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알래스카의 골드 러시
알래스카의 골드 러시는 여러 시대와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각각의 골드 러시는 그 시대와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제일 먼저 발생한 골드 러시는 1896년에서 1899년 사이 약 3년 동안 있었던 알래스카 인근의 캐나다 유콘 클론다이크(Klondike) 골드 러시이다. 1896년 8월, 클론다이크 강 근처에서 조지 카마크 등의 탐험가가 금을 발견하면서 열풍이 시작되었다. 이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금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1897년,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미국 서부 해안 지역에서 클론다이크로부터 금을 가져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금을 찾아 유콘으로 향했다. 이때 알래스카의 남부에 있는 항구 스카그웨이가 클론다이크로 가는 주요 관문역할을 했다.
클론다이크에서 금이 발견된 곳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들며, 1896년 말부터 '도슨 시티'(캐나다령)라는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 도시는 골드 러시의 중심지로, 순식간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하여 이곳에 정착했다.
1899년, 클론다이크에서 더 이상 대규모로 금이 발견되지 않게 되면서 골드 러시는 빠르게 끝났다. 대신, 놈(Nome)나 페어뱅크스(Fairbanks) 등의 다른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자 많은 이들이 그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1899년, 놈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놈 골드 러시가 시작되었다. 이 골드 러시는 약 10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많은 탐험가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였던 펠릭스 페드로가 처음 황금을 발견하고 이와 동시에 바네트(E. T. Barnette) 선장의 체나강(Chena River) 교역소 건립 목표가 실행되면서 페어뱅크스 골드 러시가 시작됐다. 바네트는 페어뱅크스 도시의 창립자이자 초기 금광 열풍 시기의 중요한 인물로, 알래스카 내륙의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업가이다. 사금 채취통을 든 탐광자들로 이 지역은 가득 메워졌으며 이후 작은 수동이동식 굴착기, 대형 준설기와 광산이 등장했다.
금이 발견되기 전, 페어뱅크스는 없는 곳이었지만, 금광 열풍이 시작되면서 단기간에 도시가 형성됐다. 페어뱅크스라는 이름은 당시 알래스카를 관할하던 연방 판사이자 상원의원인 찰스 페어뱅크스(Charles W. Fairbanks)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골드 러시는 페어뱅크스를 알래스카 내륙의 경제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도시는 물류와 상업 허브로 성장하게 됐다.
기타 주노 골드 러시, 아이디타로드 골드 러시 등이 있다.
알래스카 골드 드렛지 8 탐방
알래스카 골드 드렛지(Gold Dredge) 8은 페어뱅크스 근처에 있는 역사적인 금 채굴지 및 관광 명소다. 1928년에 처음 가동된 이 드렛지에는 주로 금을 채굴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기계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금 채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적 유산을 보여주며, 방문객들에게 금 채굴의 역사와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골드 드렛지 8에서 금을 채굴하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장비와 역사적 기계를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다.
방문객들은 직접 패닝(panning) 체험을 통해 금을 찾아볼 수 있다. 패닝이란 채굴장에서 준 조그마한 모래 봉지를 받아서 물을 이용하여 금을 골라내는 작업을 말한다.
기자도 모래 봉지를 받아 패닝 작업을 직접 해보았다. 요령껏 모래와 돌을 골라내고 나니 사금 조각들이 사진 처럼 모였다.
관광객들이 채취한 사금을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에 담아가면 무게를 달아 가격 계산도 해주고, 목걸이와 같은 장식품으로도 만들어 준다. 물론 제작비는 본인 부담이다.
아래 사진은 드렛지에서 실제로 받았던 한 근로자의 봉급 수표를 보여준다.
이 수표는 당시 22살이었던 미스 제니비브 파커(Genevieve Parker)에게 발행된 봉급 수표로 금액에는 172 달러 50센트가 적혀있다. 수표가 발행된 1929년 12월은 미국 경제 대공황이 끝나고 불과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아, 이 금액은 당시로 보아 상당한 액수로 보인다. 파커 양은 유일한 여성 금 채굴 엔지니어로 유명했으며, 미국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알래스카를 방문했을때 만났다고 한다.
골드 러시 효과
알래스카는 19세기 말 골드 러시의 영향으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1896년 캐나다의 클론다이크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수많은 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알래스카를 통과하거나 머물게 됐다. 금을 찾아온 수천 명의 광부와 모험가들이 알래스카로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는 인구가 희박했던 알래스카의 여러 지역이 갑작스럽게 붐비게 되었고, 특히 스카그웨이와 같은 도시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구 증가에 따라 교통 및 물류를 위한 인프라가 확장됐다. 골드 러시의 주요 통로였던 화이트 패스와 유콘 강 일대에 도로와 철도가 건설되었다. 이 인프라 확장은 이후 알래스카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금을 캐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물자를 공급하거나 숙박, 음식, 장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인과 기업들도 알래스카로 들어왔다. 이로 인해 광업 외에도 다양한 산업이 활성화되었다.
골드 러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알래스카에 남아 정착하였고, 이들이 농업, 어업, 벌목업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을 시작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페어뱅크스와 같은 도시는 골드 러시와 이후의 광산업 활동 덕분에 알래스카의 주요 도시로 자리 잡았다.
골드 러시로 알래스카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미국은 알래스카를 더 전략적이고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후의 인프라 확장 및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알래스카는 골드 러시를 통해 인구 증가, 경제 발전, 인프라 확장 등으로 큰 변화를 겪었으며, 유전 발견과 함께 알래스카가 오늘과 같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