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말의 묘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손바닥을 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은 모두 ‘닫다’ 이고,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은 다시 ‘열다’를 의미한다. ‘열다’는 세상을 열다, 즉 동쪽 하늘에 해가 뜨면서 하루가 밝게 열리는 양(陽)이다. ‘닫다’는 하루해가 지면서 낮 시간이 닫히면서 어두운 밤이 되는 음(陰)이다. 이처럼 우리말 숫자에는 밤과 낮이 교차하는 음양(陰陽)의 이치가 들어있다. ‘일-이-삼-사-오’는 중국어의 ‘이-얼-산-스-우’의 발음에서 변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말 ‘몸’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몸’의 글자 모양은 좌선하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고, 그 발음과 뜻은 ‘모으다’의 명사형 ‘모음’이다. 우리 몸이 형성되는 이치와 태어나서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그 묘미를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나의 ‘몸’은 없었다. 내 몸은 아버지 정자와 어머니 난자의 신비한 만남, 즉 두 가지의 ‘모아지면서’로 새로운 생명으로 형성되었다. 아버지의 인(因)이라는 씨앗이 어머니의 연(緣)이라는 밭에 심어져서 피가 돌면서 살과 뼈가 형성된 인연(因緣)이 마침내 고고성(呱呱聲) 울음을 터트리며 이 세상에 등장했다.
‘모음’으로 잉태된 나는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모으’면서 자라났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유를 먹다가 이유식 단계를 지나 음식을 날마다 모으(먹으)면서 성장했다. 나는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이 땅의 여러 가지 식물성과 동물성 그리고 광물질까지 ‘모음’을 계속하는 존재이다.
사람의 한 평생은 모음으로 시작하여 모음을 중지하면서 끝난다. 무언가 잘못 ‘모아’들이면 모음의 본체 ‘몸’에 고장이 생긴다. 세상의 이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자연치유는 맑은 공기와 올바른 음식 모음의 이치가 조화, 정상적인 모음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은 신토불이의 깊은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신토불이의 심층의미는 ‘하늘이 내린 이 땅의 음식을 올바르게 먹어야 한다.’ 라는 지혜이자, 경고이다. 복어 요리나 버섯을 잘못 먹으면 단시간에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음식 모음이 잘못되면 비만에 이르고, 고혈압, 당뇨, 또는 각종 암에 걸리게 된다. 편식과 폭식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음의 시작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천지인(天地人)의 우주적 흐름에 내재하는 이치(道)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사자성어이다. 하늘(時理)과 땅(地理)의 이치에 벗어나는 사람은 사람다운 길(道理)을 가지 못한다. 운동선수들이 약물을 사용하지 못 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나, 강력계 형사들이 마약을 단속하는 것도 올바르게 살지 않는 이들을 법으로 강압하는 조치이다. 한 사람이 자신을 파괴하는 유혹에 빠지게 되면 이것이 확산되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과식도 자신을 그릇되게 하는 어리석음이다. 지혜 있는 어부는 자신이 먹을 만큼 물고기를 잡지만,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물고기들이 씨가 마르도록 포획하면서 생명의 원천인 환경을 파괴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도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을 모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권력과 부의 편중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이 문제이다. 악덕 업주들이 사회적인 비난을 받는 것도 그릇된 욕심에 대한 지탄이다.
우리말 ‘몸’이라는 단어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들어있다. ‘몸’에는 음식이라는 생명의 원천을 모으는 행동뿐만 아니라, 모아서 형성된 생명 에너지를 배설하는 이치도 들어있다. 오늘 신문에도 어떤 음밀한 산장에 모여서 ‘잘못 먹고 마시며 배설’한 사람들을 검찰이 다시 조사한다는 뉴스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