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르포] 토론토와 천섬
[캐나다 르포] 토론토와 천섬
  • 전용희 기자
  • 승인 2024.09.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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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
- 도시의 상징 CN 타워
-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변화한 디스틸러리 지구 거리
- 1,8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천섬
- 볼트 성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

캐나다 이야기

나이아가라 폭포의 감동을 뒤로 하고 토론토로 향했다. 다음 캐나다 르포 기사 전에 캐나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자 한다. 

캐나다는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나라로 남북한 크기의 약 45 배 정도다. 인구는 올해 4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인구 유입 정책으로 인구는 지속하여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해안선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 수도는 오타와이며, 큰 도시로는 서부에 벤쿠버가 있고, 동부 지역에는 토론토와 몬트리올이 있다. 

캐나다라는 이름은 16세기 초 프랑스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가 퀘백 지역 어느 마을에 도착하였는데 원주민에게 지명을 물어 보았을 때 '카나타'라고 답하면서 생겨났다. 원주민 언어에서 '촌락' 또는 '마을'을 뜻한다. 의사 소통의 부족으로 카르티에가 이 지역의 이름을 '캐나다'로 알고 사용하게 되고, 프랑스 정부에도 그렇게 보고하게 됐다.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된 단어가 탐험가들에 의해 사용되었고, 공식 국가 명칭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캐나다는 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양국 모두의 영향을 받았다. 캐나다를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영국과의 갈등이 있었고,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캐나다 내 프랑스계 주민과 영국계 주민 간의 갈등은 계속되었지만, 양국의 문화와 법적 전통이 혼합되어 오늘날의 캐나다 사회를 형성하게 됐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인정된 이중언어 국가이다. 지역에 따라 두 언어의 사용 비율이 다르다. 퀘벡 주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고, 반면 토론토 시가 있는 온타리오 주는 영어가 주 언어로 사용된다. 온타리오 주는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대부분이며, 정부와 비즈니스, 교육 등 대부분의 공식 문서와 서비스가 영어로 제공된다. 그러나 프랑스어 사용자도 다수 존재하며, 특히 수도인 오타와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동등하게 사용된다. 

캐나다에서는 화합을 중요시 한다. 이민 정책으로 다양한 인종, 문화, 언어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로, 화합과 통합은 사회의 안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영국계, 프랑스계 등의 유럽인과 아시아인 등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어, 이들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가 존중받고 있다. 화합은 이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할 터이다.

여행 가이드는 캐나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캐나다의 15대 총리를 지낸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Pierre Elliott Trudeau)를 꼽았다. 79년과 80년에 약 8개월 간의 공백 기간을 제외하고 1968년 4월부터 1984년 6월까지 2차에 걸쳐 16년 가까이 임기를 지냈다. 캐나다 헌법을 개정하고, 공식 이중 언어 정책을 도입했으며, 다문화주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의 개혁적 정책과 비전 덕분에 현재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 시각 차이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재 캐나다 총리는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로,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의 아들이다. 캐나다 최초의 부자 총리이다. 그의 정책과 리더십에 대한 평가와 존경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고, 아버지만큼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캐나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팀 호턴(a.k.a. 팀 홀튼, Tim Horton)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전문점도 그의 이름을 딴 '팀 호턴'이다. 196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에서 설립된 후 전역으로 퍼져 캐나다에서 가장 큰 패스트푸드 음식점이 됐다. 사업은 번창했지만 4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캐나다인의 애국심으로 캐나다에서만은 S사 보다 훨씬 많은 매장이 있다. 한국에도 지난 해 말 상륙해 매장을 열었다. 

 

토론토 이야기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로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300만 명 이상이며, 광역 토론토 지역를 포함하면 약 7백만 이상이 된다. 영국계, 이탈리아계, 포르투갈계 등의 유럽 이민자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민족, 중동, 아프리카, 남미 출신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다양한 도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 이민자도 많이 살고 있다. 몇 지역에서 한인 식당, 마트, 카페와 미용실 등이 있는 한인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시내를 걷다 보니 특히 인도계가 많이 보이는 것이 특이했다. 

토론토 유람선을 타면 시내 건물 스카이라인을 잘 볼 수 있다. CN(Canadian National) 타워와 바로 옆에 있는 스카이돔을 비롯하여 여러 고층 빌딩들이 호수 위에 반영과 함께 멋진 장면을 만들어낸다. 배 안에서 편안하게 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관망할 수 있다. 외부 갑판에 나가서 쾌적하게 바람을 쏘이며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다. 영어 듣기가 되면 가이드의 해설을 통하여 도시의 주요 랜드마크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토론토의 상징적 랜드마크는 CN 타워이다. 원래 방송 송신탑으로 설계됐다. 높이는 553 미터로 개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기록되기도 했다. 현재는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그리고 360도 회전하는 레스토랑으로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행해지는 CN 타워 전망대 도보 체험인 '에지 워크(edge walk)'는 모험심이 있는 사람들의 스릴 넘치는 액티비티로 유명하며,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아래 사진은 CN 타워와 타워 바로 옆에 있는 스카이돔과 건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CN 타워, 스카이돔과 토론토 시내 전경. 전용희기자
CN 타워, 스카이돔과 토론토 시내 전경. 전용희기자

스카이돔은 류현진 선수가 얼마 전까지 토론토의 블루제이스(Blue Jays)에서 투수로 활약할 때 뛰었던 야구장이다. 스카이돔의 공식 이름은 로저스 센터로 블루제이스 팀의 홈 구장이다. 개폐식 지붕으로 유명하며, 여러가지 스포츠 행사와 콘서트 등에서 사용된다. 

토론토의 스카이라인은 현대적인 고층 빌딩과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이로 인해 도시의 경관이 매우 다채롭다. CN 타워와 같은 상징적인 구조물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대표하고 있으며, 다양한 건축 양식의 고층 빌딩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최근 건축물들은 유리와 금속을 활용한 외장 디자인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도시의 건물들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며, 모던한 이미지의 도시 경관을 보여주었다.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토론토 시내. 전용희기자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토론토 시내. 전용희기자

 

토론토의 구 시청 건물(Old City Hall)은 도시의 역사적, 건축적 상징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토론토 구 시청 건물 일대. 전용희기자
토론토 구 시청 건물 일대. 전용희기자

 

토론토는 도시의 확장으로 인하여 외곽까지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도시의 스프롤 현상이 관측됐다. 스프롤(sprawl) 현상은 난 개발의 한 종류로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교외 지대가 무계획적이고 비효율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을 말한다. 

 

주류 공장에서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탄생한 디스틸러리 지구 거리

토론토의 디스틸러리 지구(Distillery District)는 원래 캐나다에서 가장 큰 주류 양조 및 증류 시설 중 하나였다. 19세기 초에는 주로 위스키와 같은 주류를 제조하는 시설로 운영됐다. 또한 철도와 항만이 인접해 많은 산업 시설과 창고가 밀집해 있었다. 당시에는 지역 경제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에 디스틸러리 지역은 산업의 변화와 함께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대 이후로 주류 제조업체의 이전과 산업의 변화로 인해 지역의 산업적 중요성은 감소했다. 이후 건물들이 방치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

예전 공장 내부의 모습. 전용희기자
디스틸러리 지구 내 예전 공장 내부의 모습. 전용희기자

 

1980년대 후반 디스틸러리 지역은 거의 버려진 상태에 이르렀고, 많은 건물들이 방치되었다. 지역 주민들과 정부는 이 지역의 역사적 가치와 잠재력을 인식하고, 재활성화 작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1990년대 초 디스틸러리 지역의 재활성화를 통하여 현대적인 용도로 변형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복원되었으며, 지역의 산업적 유산을 현대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디스틸러리 지구는 토론토의 인기 있는 관광지이자 문화적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상점,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그리고 연극 공연장과 같은 문화 시설들이 모여 있는 활기찬 지역으로 변모했다.

리모델링된 공장의 카페에서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고 있다. 전용희기자
리모델링된 공장의 카페에서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고 있다. 전용희기자

 

예술과 문화 이벤트가 자주 열리는 장소로도 이용되며,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적인 활기가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제공한다. 변화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도시 재생 모델의 성공적 케이스를 보는 것 같았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지구에서는 음악 공연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디스틸러리 지구와 현대적 건물이 잘 어루어져 보인다. 전용희기자
오래된 디스틸러리 지구와 현대적 건물이 잘 어루어져 보인다. 전용희기자

 

천섬

천섬(Thousand Islands)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의 하나로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미국 뉴욕주 경계에 걸쳐 있으며,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천섬에는 약 1,800여 개의 섬이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섬은 작은 크기이지만, 그중 몇몇은 거주지나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섬들은 푸른 물과 울창한 숲, 다양한 야생 동물로 가득 차 있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 낚시, 보트 타기, 수영과 같은 야외 활동도 많이 한다.

천섬을 여행하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크루즈선을 타고 섬들을 돌아보며 섬의 경관을 보는 것이다.  많은 역사적 건물과 섬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특히 하트섬의 '볼트 성(Boldt Castle)'이 유명하다. 볼트 성이 있는 하트섬은 천섬 안의 미국령에 속한다.

천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인 볼트 성. 전용희기자
천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인 볼트 성. 전용희기자

 

아름다운 성으로, 천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이다. 미국의 갑부 조지 볼트가 그의 아내를 위해 만든 성으로, 화려한 건축과 아름다운 정원이 특징이다. 120개의 방이 있는 6층 건물로 네오고딕(Neo-Gothic) 양식으로 설계됐다. 1900년에 건설이 시작됐으나 1904년에 아내인 루이스가 갑자기 죽자 공사는 중단됐다. 볼트도 다시는 그 성을 찾지 않았다 한다.

73년 동안 방치 상태로 있던 볼트성을 1997년 천섬 브릿지 당국(Thousand Islands Bridge Authority: TIBA)이 구입해 보수 공사를 마무리하고 일반 관광객들을 위해 공개하게 됐다. 성의 외부에는 날카로운 첨탑과 아치형 창문으로 중세 유럽의 성들을 연상시키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다양한 형태의 타워와 벽도 성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든다. 

천섬의 모습. 전용희기자
천섬에는 많은 별장들이 있다. 전용희기자

 

우리가 샐러드 드레싱에 자주 사용하는 싸우전드 아일랜드 소스는 주로 마요네즈, 케첩, 식초, 양파, 피클 등의 재료를 섞어 만든 소스이다. 소스의 이름은 천섬 지역의 명칭에서 유래되었으며, 소스가 이 지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름이 붙여졌다.

 

볼트 성에 얽힌 슬픈 사랑의 이야기*

(기자 주: 천섬을 여행하는 많은 한국인들 중에는 볼트 성에 얽혀있는 조지 볼트(George Boldt)와 그의 아내 루이스 케러(Louise Kehrer)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시니어 매일 독자 중에서도 관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돼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천섬 안 하트 섬에 성을 지어 그의 아내인 루이스 케러에게 받치고자 했던 조지 볼트의 사랑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업스테이트 뉴욕에 있는 사랑의 상징 중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것은 세인트 로렌스 강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 지어진 성일 것이다. 한 남자가 그의 아내를 향한 놀라운 사랑과 그녀를 위해 그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이야기이다.

조지 볼트는 뉴욕의 부유한 호텔리어(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강가에 이미 한 채의 저택을 소유하고 있던 중 아름다운 필라델피아 출신의 사교계 여성 루이스 케러를 만났다. 그들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루이스는 남편과 함께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장식을 도와 호텔을 우아하게 만들었다.

조지 볼트는 1851년 프러시아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는 호텔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빠르게 호텔업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루이스 케러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삶에서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는 그녀를 공주처럼 여겼다. 그들은 1879년에 찰스 주니어를, 1883년에 루이스 클로버와 같이 두 자녀를 두었다.

조지 볼트는 호텔업에서 막대한 재산을 모았으며, 필라델피아의 벨뷰 호텔과 스트랫포드 호텔(후에 벨뷰-스트랫포드로 변경됨)을 소유하고 운영했다. 1893년, 윌리엄 월도프 애스터가 뉴욕 시에 월도프 호텔을 지었을 때, 조지 볼트가 그 호텔을 관리했다. 루이스는 남편의 꾸준한 동반자였으며, 가능한 한 호텔 일에 참여했다.

그녀에게 멋진 여름 별장을 선물하고 싶었던 볼트는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 주택이 될 것을 계획하며 건축을 시작했다. 그는 6층짜리 성에 120개의 방과 요트 하우스, 전용 발전소를 갖추기를 원했다. 1895년 조지 볼트는 하트 섬을 구입하고, 그런 성을 지어 발렌타인 데이에 루이스에게 선물하려고 했다. 

1900년에 볼트 성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300명 이상의 최고의 석공과 장인들이 고용되어 매일 10시간씩 작업을 했다. 작업자들은 조지 볼트가 루이스에게 선물할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에서 요구되는 세부 사항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여름 별장'의 작업이 시작된 지 4년이 지났고, 1904년 1월에 완공이 가까워졌을 때 비극이 닥쳤다. 아내인 루이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

슬픔에 빠진 조지는 아내가 없는 볼트 성이 의미없다 생각하고, 즉시 섬의 건축 감독에게 전보를 보내어 건설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성 공사는 완공을 거의 앞두고 중단됐고, 300명의 작업자들은 망치와 도구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조지 볼트는 살아 있는 동안 하트 섬에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1916년 월도프 아스토리아 자신의 방에서 혼자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 조지 볼트와 루이스의 사랑 이야기는 WordPress.com과 newyorkupstate.com/news의 자료를 바탕으로 편집해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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