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어드 기차 여행
- 엑시트 빙하를 통해본 빙하 후퇴
- 나무에게 배운다
- 에필로그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알래스카 대자연의 모습이 지나가고, 버스 안에서는 구수한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알래스카 가이드인 김대장은 멋진 멘트로 노래의 맛을 더해준다. 이 순간 만큼은 그는 최고의 DJ(디스크 자키)이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초록 나무와 빨간 장미를 보았네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나와 너를 위해 피어나는 모습이여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나는 생각하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
알래스카의 끝없는 설산과 빙하가 펼쳐진 길 위로 버스가 달린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하얀 정적에 휩싸여, 시간이 멈춘 듯하다. 눈부신 햇살이 하늘 아래 새하얀 눈을 은빛으로 물들이며 내려앉고, 빙하의 푸르스름한 빛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고요하게 반짝인다.
버스는 굽이치는 설산 사이를 유유히 헤쳐 나간다. 차 안에 흐르는 'What a Wonderful World'의 멜로디는 여행의 감흥을 더해준다. 루이 암스트롱의 저음이 가슴 속에 울릴 때, 나무가 푸르게 우거지고 장미가 피어나는 가사의 장면은 알래스카 풍광과 어우러져 꿈처럼 피어난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대자연 속에서, 세상이 지닌 무한한 아름다움을 깊이 느낀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흰 구름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 아래에는 눈 덮인 산과 빙하물이 흐르는 강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자연은 얼마나 조화로운가.
눈부신 하얀 설산, 웅장한 빙하, 그 아래에서 싱싱한 초록이 숨 쉬는 곳.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수어드 기차 여행
알래스카에서 수어드(Seward)로 향하는 기차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변화무쌍한 자연의 풍경을 스크린처럼 펼쳐 보여준다. 기차가 지나며 창밖에는 끝없이 펼쳐진 설산과 하늘 높이 솟은 산맥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 덮인 산봉우리들은 얼음 조각처럼 빛나고, 그 아래로는 빽빽한 침엽수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빛을 받은 눈꽃들이 나무 가지 사이에서 반짝이며, 찬란한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기차는 강과 만을 지나면서 바다가 보이는 구간에 다다른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물빛은 진한 청록색으로, 고요한 수면 위로 빙하가 떠다니고 있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은 어디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것인가.
수어드 항에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턴어게인 만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극적인 풍경을 만든다. 만의 양쪽으로 가파르게 솟은 첩첩의 산과 그 아래로 흐르는 푸른 물줄기가 대비를 이루며 장관을 이룬다.
턴어게인 만은 탐험가 제임스 쿡이 북서 항로를 찾기 위해 탐험하던 중 항로가 막혀 다시 돌아가야 했던 사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이 지역을 항해하다가 막다른 곳임을 깨닫고 '다시 돌아가라(Turnagain)'는 의미에서 턴어게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턴어게인 만은 세계에서 가장 큰 조수 차이를 가진 곳 중 하나다. 이곳의 조수 차이는 최대 12m에 이르며, 하루에 두 번씩 물이 빠지고 차는 주기적인 변화를 겪는다. 밀물이 급격히 밀려들어 올 때는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파도가 형성되며, 서퍼들이 이 파도를 타는 독특한 광경을 볼 수도 있다.
엑시트 빙하를 통해본 빙하 후퇴
엑시트 빙하(Exit Glacier)는 알래스카의 케나이 피오르드 국립공원(Kenai Fjords National Park)에 위치한 빙하로, 지난 몇 세기 동안 꾸준한 후퇴를 겪어왔다. 이 빙하도 기후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엑시트 빙하는 약 200년 전인 1815년경부터 후퇴 기록이 시작됐다. 당시 빙하는 현재 위치보다 훨씬 더 전진해 있었으며, 아래 사진 설명에 의하면 사진의 가장 밑 부분까지 앞쪽에 있었다.
19세기 후반, 빙하는 천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기온이 서서히 오를 때 부터가, 빙하들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1950년대에 이르러, 빙하의 후퇴 속도는 점차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후퇴 속도가 더욱 가속화 되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기온 상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후 온난화는 빙하 후퇴를 가속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후퇴 속도는 더 빨라지며 2010년대에 이르러 엑시트 빙하는 더욱 빠른 속도로 후퇴했다. 특히 여름철 기온 상승과 더불어 겨울철 강설량이 줄어들면서 빙하의 축적이 어려워지고, 지속적인 후퇴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2020년까지 엑시트 빙하는 지난 200년 동안 약 3km 후퇴한 것으로 측정됐다.
나무에게 배운다
▶알래스카 옹이(burls) 혹은 매듭(knots)
알래스카 옹이나 매듭은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독특한 목재 결 변형체로, 자연이 만들어 내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패턴과 독특한 형상 때문에 수공예나 가구 제작, 예술 작품에 많이 활용된다. 알래스카 옹이는 특히 그 독특한 형상과 희소성 때문에 매우 가치 있는 재료로 평가받는다.
주로 토양 속에 포함된 산성때문에 이런 옹이가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가문비 나무(spruce tree)에서 많이 발견된다. 산성도가 세포의 막힘을 유발하면, 나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층 형성층에서 새로운 세포를 생성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포들도 막히게 되고, 나무는 다시 막힘 주위를 성장해 나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매듭이라고 불리는 혹이 형성된다.
우리 앞에 있는 모든 현상을 아무렇게나 보고 그냥 지나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혹이 만들어진 과정은 생명의 끈질김과 자기 회복 본능을 보여준다. 나무는 끊임없이 막힌 부분을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며 자라나고, 그 결과로 혹이나 결절 같은 독특한 형태가 생긴다. 이 마디는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생명이 역경을 이겨내고자 한 흔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강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볼 수 있으리라.
▶자작나무
알래스카에는 자작나무가 많이 있다. 비교적 추운 기후에 잘 견디는 나무로, 알래스카와 같은 북극 근처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껍질은 여러 겹의 종이질 구조로 되어 있어, 추운 기후에서도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양한 토양 조건에서도 잘 자라며, 북부와 중부 지역의 저지대부터 고산 지대까지 넓은 범위로 퍼져 알래스카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작나무는 알래스카 숲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작나무는 자연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나무다. 험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뿌리 내리고 자라는 자작나무는 추운 겨울의 눈과 바람 속에서도 휘어지지 않고 하얀 껍질을 더욱 반짝인다. 자작나무의 얇고 하얀 껍질은 얼핏 부서지기 쉬워 보이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단단함은 어떤 혹한도 이겨내는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뿌리는 깊이 박히지 않지만, 얇고 넓게 퍼져서 어디서든 영양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는 자작나무는 주변 환경에 민감하면서도 적응력이 뛰어나다.
이런 자작나무의 강인함을 배우고 싶다.
에필로그
알래스카 대자연을 보고난 후의 느낌은 한편의 시와 같다고나 할까. 여행 중에 만난 수 많은 설산, 컬럼비아 빙하를 비롯한 여러 빙하들, 그리고 디날리 공원의 감동적인 풍경으로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알래스카의 설산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만년설로 덮인 산들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봉우리들은 우주와 맞닿아 있는 듯한 경외감을 주었다. 이 광경은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어,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컬럼비아 빙하를 방문했을 때는 그 크기와 힘에 경외감 마저 들었다. 수천 년 전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고, 빙하 앞 바다에 떠 있는 수 많은 유빙들은 빙하의 눈물처럼 다가왔다. 빙하 후퇴 현상을 보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디날리 위용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영화로나마 접한 광활한 대자연의 모습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연어의 회귀에서 거룩한 생명의 순환과 사랑의 본질을 보았다.
알래스카 여행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 안에서의 내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