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라 맛 따라] 식혜
[이야기 따라 맛 따라] 식혜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4.08.27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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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는 천연 소화제
떡과 함께 곁들이는 음료
식혜는 음료, 감주는 술
단호박 응용한 호박식혜
식혜. 노정희 기자
식혜. 노정희 기자

주방 들락거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눈에 띄는 것마다 식재료로 보인다. 망치질 잘하는 사람 눈에 못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필 단호박 한 덩이가 감자 바구니에 섞여 있을 줄이야. 엿기름 우려서 멥쌀밥과 버무려 밥통에 안친다. 호박은 삶아두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식혜. 노정희 기자
식혜. 노정희 기자

“금색(禽色)의 황망함과 감주(甘酒)하고 기음(嗜音)하는 것은 ‘하서’에 실려 있으니, 만세에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세자가 종묘에 고하는 구절이 ‘태종실록’에 실려 있다. 당시의 ‘감주’는 ‘술을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다가 술에 취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찹쌀과 누룩으로 단시일에 술을 빚었는데, 알코올이 약간 들어있는 감주(甘酒)였다.

사전적으로 식혜와 감주는 다른 음료를 말한다. 식혜 만들 때는 엿기름을, 감주는 누룩을 사용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식혜는 감주가 아니다. 식혜가 음료라면 감주는 술이다.

식혜는 식물성 발효음식이다. 식혜는 단맛만 있지만, 감주는 단맛[甘]에 술맛[酒]이 더해진 것이다. 식혜는 액상인데도 ‘먹는다’고 한다. 반면 감주는 ‘마신다’라고 한다. 식혜는 밥알 건더기를 함께 먹고 감주는 걸러내어 물(술)을 마셨다.

단호박 응용한 식혜. 노정희 기자
단호박 응용한 호박식혜. 노정희 기자

옛사람은 동물성 식재료도 발효해 먹었는데 그것이 ‘식해(食醢)’이다. 해(醢)는 젓갈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오늘날 음료인 식혜를 ‘식해’로, 젓갈인 ‘식해’를 도리어 ‘식혜’로 표기해놓았다. 식혜, 식해, 감주 구분이 모호해진 이유이다. 경상도에서는 식혜를 감주(甘酒)라 하고, 충청도 일부에서는 감주와 식혜를 같은 음료로 본다. 문헌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도 혼선이 빚어졌으니 사료 비판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예전에는 명절이나 집안 행사 시에만 식혜를 먹을 수 있었다. 골방 아랫목에 항아리에 담은 재료를 담요로 푹 뒤집어씌워 하룻밤 재우고, 가마솥에 팔팔 끓여 식혀서 마시던 달곰한 음료가 식혜였다. 방식만 조금 달랐을 뿐 고두밥에 누룩을 버무려 항아리에 안친 것은 뒤란 광에서 시쿰하게 발효되었다. 대나무로 만든 용수를 항아리에 박아두고 기다란 국자로 액체를 떠서 주전자에 담았다. 농사일에 지친 아버지는 탁배기 한잔에 위안을 받으셨을 것이다.

밥솥에 안쳐 보온해놓은 내용물은 통상 저녁 식사 후에 안치면 다음 날 아침 정도에 밥알이 뜬다. 단호박(믹서)이나 기타 재료를 넣어 끓이면 이색 음료가 된다. 팔팔 끓인 후 단맛을 조절하여 식힌 후 냉장고에 두면 전통 음료 식혜가 되는 것이다.

식혜. 노정희 기자
식혜. 노정희 기자

식혜의 주재료인 엿기름에는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라는 소화 효소가 들어있다. 명절에 떡 먹을 때 곁들이면 속을 편안하게 하는 천연 소화제로 그만이다. 시중에 판매하는 음료는 단맛이 강하나, 조금 손이 가더라도 직접 만들면 당분을 조절할 수 있고, 이색 음료로 즐길 수 있다.

식혜를 오래 두면 발효되어 가스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미리 냉동보관하면 필요할 때 꺼내어 마실 수 있고 빙설로 응용해도 된다. 간혹 식혜의 밥알 건더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내용물을 분리해서 마시면 된다.  

 

Tip : 내용물 삭힐 때 어느 정도 설탕을 넣어 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삭히는 과정에서 끓이면 효소가 파괴된다. 취사를 누르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