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8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8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10.05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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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화냥년이라고 토끼몰이하듯 몰아붙인 지난날을 염두에 둔 것일까?
소작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집 안팎을 두루 돌아가며 살핀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달아가며 어머님께 곡식 섬을 받아 가는데! 그것에 좀 문제가 있는 듯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저기~ 저 이봐 유~ 그~ 근께! 있잖아유! 나~ 있잖아유! 근께 나~ 안 무거워유?”
“응~ 아~ 아니! 하나도!”
“저기~ 저~ 그~ 그게~ 저~ 근께 있잖아유! 그게 아닐걸요!” 중얼거리는 복녀는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어째서 그러게유!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업었는디유!’ 기분에 취해 복중 태아를 무심코 입에다 올릴 뻔했다. 아차 싶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쓰는 복녀는 아직은 향후를 장담할 수가 없어 그저 마음만 애달다.

“아니야 가벼워~ 진짜로 하나도 안 무거워~ 응~ 근게, 그게 저기~ 저 복녀야 미안해~!” 흐린 말끝으로 잔뜩 풀이 잔뜩 죽었다.

한데 덕배는 이 상황에서 무얼 미안하다며 고백처럼 말할까? 진짜로 볏단처럼 가벼워서일까? 아니면 천하에 빌어먹을 화냥년이라고 토끼몰이하듯 몰아붙인 지난날을 염두에 둔 것일까? 남편으로서 삼시 세끼를 책임지지 못한 자신을 탓해서일까? 과거를 닦달로 손찌검한 지난날들이 후회로 점철되어서일까? 복녀는 그저 머리가 복잡하다. 에메랄드빛 시린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 한 조각이 세상근심을 잊은 듯 유난히 하얗다.

그날 낮에도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상다리가 뿌려지게 음식상이 차려짐은 물론이다. 물 만난 고기처럼, 앞마당으로 차려진 음식상 앞에 앉았던 아이들도 기름진 음식으로 오지게 배가 불러서 좋은 날이기도 했다. 주인이 누군가와는 상관없이 음식상을 베풀어 준, 평소 툽상스러운 할망구라며 눈을 흘겨가면서 노래를 불렀던 행랑어멈에게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굽신거린 날이기도 했다. 다른 점이라면 일찌감치 일을 마무리 짓고는 집으로 향하는 소작인마다 나락 한 가마니씩을 지게에다 얹어지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온갖 정성을 다한 작업임에도 불구 오후 샛거리(‘겉두리’의 방언으로 새참)에도 못 미쳐 말끔하게 일이 끝났다는 점이다.

조선 조, 제22대 정조임금은 수원화성을 축조했다. 설계도면 상의 애당초 공사 기간은 9년이었다. 한데 실제 공사 기간은 3년에도 못 미쳤다. 공사감독은 맡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거중기(擧重機)와 녹로(轆轤) 등을 개발하여 사용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문제는 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한결같은 의지의 결과였다. 다산 정약용은 수원화성 축조 당시 획기적인 방법을 썼다. 본래 부역이나 노역에는 일당이 없다. 한데 당시 노동자들에게는 균일하게 일당이 지급되었다. 따라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원하는 일터로 변해 내남없이 발 벗고 나선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창고 정리를 포함하여 잡다한 일의 이른 마무리는 나락 한 가마니에 또 다른 변수를 불러오는 듯 소작인들의 얼굴마다 근심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다.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얼굴로 어둠이 잔뜩 깃든 소작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집 안팎을 두루 돌아가며 살핀다.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찾아 사파리를 어슬렁거렸다면, ‘전에는 횃불을 밝히고 나서야 끝났는데 오늘 일은 어찌 이리도 일찍 끝났단 말인가?’ 쉴 참에도 일거리를 찾아 뒤란과 담장을 찬찬히 둘러보며 안절부절 못한다. 노가다(どかた: 공사장이나 노동판, 또는 그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어 ‘도가타(どかた)’에서 온 말) 판에서는 땀을 흘리면 안 된다는 이론을 빗나가 평소 니미락-내미락 미루던 때와는 달리 시키지도 않았건만 서로 하겠다며 다투는 탓에 얼굴마다 땀방울이 주렁주렁하다. 역시나 샛거리가 끝날 무렵부터 초조함에 깃든 마누라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펴 가며 행랑아범이 심심풀이 차 패는 장작도 알뜰하게 마무리 지어버린다. 불콰하게 술기운이 얼굴 가득 감돌았건만 아랑곳하지 않고는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알뜰히 찾아가며 놓치지를 않는다.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늙은 생강이 맵다고 행랑아범이었다. 기어이 수돌 아비를 붙잡아 한 마디다.

“아~ 이 사람아 대체 왜들 그러는가? 아~ 일들을 마쳤으면 마님께 인사를 드리고 일찌감치 집에 가서 쉬들 생각 않고 어째 비루먹을 강아지 모양으로 이리저리로 어정대고 있는 겐가!”

“그~ 그게 글쎄 그게요!” 그저 송구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손으로 긁적이는 수돌 아비를 보고 알만하다는 듯

“그런 쓸데없는 걱정이랑은 하지 마시게! 일이 일찍 끝나 남은 일당 만큼 나락 가마니를 헐까 봐 그러시는가?” ‘허허’ 웃더니

“작은 마님께서 자네들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라고, 후한 인심으로 갔다가 붙여 이름을 짓고, 말을 같다가 붙여서 일당이지, 그만한 일당을 어디 일당이라 할 수 있는가! 거저 주고자 그러는 건데! 알라(‘어린아이’의 방언)들 장난처럼 줬다 뺏는 물건도 아니고 남은 시간을 핑계로 손을 탈까 봐 그러는가? 다들 소심하기는! 허허허!” 한마디에 무거운 등짐을 벗은 듯 홀가분 하다는 표정이다.

창고 정리는 시어머니가 일체의 권한을 고모에게 일임한 가운데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고모의 의견에 따라 모든 쌀가마니와 곡식 등속 일체를 들어내는 것으로 창고를 말끔히 비웠다. 그런 다음 임시방편일지라도 밤송이 등으로 쥐구멍을 일일이 틀어막는 등 할 수 있는 한 기초를 최대한 다진 다음 일정한 간격으로 통나무를 깔고는 그 위를 듬성듬성하게 송판을 깔아 얹었다. 그런 연후 맨 밑에서 수년을 보낸 끝에 못 먹을 만큼 상한 것은 짐승들 먹이로 사용하도록 했다. 그마저도 어렵다 싶은 것은 미련 없이 두엄에 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하이고 저걸 어찌! 저만한 곡삭이면! 아까워서 저걸 어쩌나!” 한목소리로 아쉬운 듯 눈살을 찌푸렸건만 과거는 과거지사, 죽은 아이 불알 만진다는 격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묵묵히 입을 닫는다. 또 대충 먹을 수는 있지만 다소 문제가 있다 싶은 것은 다음날로 인절미, 송편, 절편, 시루떡 등 떡으로 쪄서 온 동네에 돌려먹는 것으로 의견일치다. 그러한 모든 절차가 끝나자 햇곡식부터 일 년을 들어서 먹을 양을 계산 후 남는 양 만큼은 고모부를 통해 불우이웃돕기에 뭉뚱그려서 내놓았다. 소작인들이 투정 반으로 ‘우리도 어려운 이웃인데’ 불만이 없잖아 있었건만 기왕에 버려진 곡식은 아깝게 벼려졌더라도 현명한 판단으로 더 어려운, 헐벗고 굶주리는 내 이웃을 돕는다는 데는 별다른 이의를 달지 못했다.

이는 전에 없던 일이라 지역 신문에 실릴 만큼 획기적이 뉴스이기도 했다. 그런 한편으로 고모부는 고모의 의견에 따라 불우이웃돕기로 내놓은 곡식으로 인해 군내의 실상을 살펴보는 시찰단 합류하게 되었다. 이에 업무가 업무인지라 고모부에게는 관용차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계획한 일들이 원활하게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자 고모는 시어머니와 다과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시어머니께 찻잔을 들어 식는다며 장유유서, 드시기를 권하자 천천히 받아드는 모습이 그렇게 자애로울 수가 없다. 후후 불어서 한 모금을 음미한 후

“지실 찻 맛은 언제 마셔도 달짝지근한 가운데 신 듯 진한 향이 일품이구먼!” 다시 한 모금을 음미하더니

“그래 새아가 네가 이렇게 다과상을 들고 나를 찾은 것에는 분명히 할 말이 있을 터, 어려워 말고 서슴없이 말해보려무나!”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볼 적에 고모가

“예~ 어머님 그것이! 그것이 다름이 아니오라 저가 옆에서 지금껏 쭉 겪어본 바에 의하면 추수가 끝나고 난 지금 이맘때쯤이면 먼 일가친척분들께서 빈객으로 찾아와 이 핑계 저 핑계를 달아가며 어머님께 곡식 섬을 받아 가는데! 그것에 좀 문제가 있는 듯하여!” 눈치를 살펴 가며 나부죽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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